19일 오전 서울 용산전자랜드 가전매장에 직원들이 TV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대국민 담화를 지켜보고 있다. 2014.5.19/뉴스1

청와대가 연 것은 캐비넷이 아니라 판도라의 상자일지도 모른다.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은 12일 국가위기관리센터의 캐비넷에서 전임 정부가 남긴 새로운 문건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발견된 자료 중에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관련 문서를 조작했다는 정황이 있다는 것.

박근혜 정부는 박 전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오전 10시에 최초 보고를 받고, 15분 뒤에 첫 지시를 내렸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임종석 비서실장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이 실제로 보고를 받은 시각은 오전 9시 30분이다.

참사 6개월 뒤인 2014년 10월 23일 청와대는 아예 참사 당일의 보고 시점을 오전 9시 30분에서 오전 10시로 수정하기도 했다. 임 비서실장은 "보고 시점과 박 전 대통령 첫 지시 사이의 시간 간격을 줄이려는 의도로 밖에 볼 수 없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박 전 대통령이 세월호 최초 보고를 받은 시점뿐만 아니라, 지시를 내린 시점과 그 내용을 두고서도 석연치않은 부분이 존재한다. 박근혜 정부가 남긴 기록 전체의 신뢰가 의심 받는 상황이기에, 제2기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제로베이스에서 검토해야 할 과제다.

①오전 10시…중대본 보고서에 등장한 '15분 뒤의 대통령 지시사항' 정체는?

중앙재난대책본부 2014년 4월 16일 상황보고

2014년 7월 10일 국회 세월호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기관보고에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상황보고서에 기재된 시간을 두고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우원식: 중대본 오전 10시 상황보고서입니다. 저기에 대통령 지시 "단 한 명의 인명 피해도 없도록 구조에 최선을 다할 것", "객실, 엔진실 등 철저히 수색해 누락되는 인원이 없도록 할 것" 10시 15분에 해양경찰청장(국가안보실장의 착오)에게 했다는 지시가 10시에 중대본 일일상황보고서에 나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이것?

김기춘: 10시에 문서를 작성하기 시작해서요. (보고서가) 완성된 시각이 적혀야 되는데 저것은 착오로 잘못 적힌 것입니다.

당시 청와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오전 10시 15분 김장수 당시 국가안보실장에게 전화 상으로 첫 지시를 내렸다고 수차례 발표했다. 하지만 '10:00'가 표기된 중대본의 상황 보고서에는 박 전 대통령의 지시 사항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채로 포함됐다. 10시15분에 지시한 내용이 10시에 작성된 문서에 기재됐다는 것이다. 

김 전 비서실장의 말처럼 단순한 착오로 기재된 것인지, 또는 지시 시점을 놓고 또다른 조작이 있었는지 밝힐 필요성이 제기된다.

②오전 10시 15분…박근혜 전 대통령, 무슨 지시 내렸나?

김장수 주중대사(전 국가안보실장)이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제3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16.12.14/뉴스1

세월호 참사 당시 국가안보실장을 맡았던 김장수 전 주중대사는 2016년 11월 베이징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유리창을 깨서라도 구해라'는 말씀이 있었던 걸로 기억이 난다"고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통화 내용을 언급했다. 하지만 김 전 대사는 한달 뒤인 12월 14일 국회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 증인으로 참석해 자신의 말을 번복했다.

박영선: 중국에서 이런 얘기를 하셨어요. "선창을 깨서라도 아이들을 구해라". 그런데 이 말을 몇 시에 뭘 어떻게 하셨다는 것인가요?

김장수: 제가 어제 와 가지고 청와대에 한번 물어봤습니다. 나는 이 말을 들은 것 같은데 워딩이 (기록에) 있느냐 없느냐 하니까 워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상하다, 나는 들은 것 같은데" 해서 제가 추정키에 아마 대통령께서 "여객선 내의 객실 등을 철저히 확인해서 누락 인원 없도록 해라", "단 한명의 인명 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해라", 또 "샅샅이 뒤져서 철저히 구조하라" 그 말에 제가 혼동을 한 것인지 착각을 한 것인지 아니면 워딩이 안 된 것인지 확답을, 확정을 못 하고 있습니다.

김 전 대사가 밝힌 박 전 대통령의 지시 내용은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다. 국정조사 전에 "청와대에 물어봤다"고 밝힌 대목 또한 사전에 입을 맞춘 후에 진술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③오전 10시 30분…박근혜 전 대통령, 해경청장과 통화했나?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이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제3차 청문회에서 증인으로 출석해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 2016.12.14/뉴스1

민경욱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참사 당일 오전 10시 30분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이 해군과 해경에 인력과 장비, 그리고 동원이 가능한 인근의 모든 구조 선박들을 최대한 활용해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이후 박 전 대통령이 오전 10시 30분에 김석균 당시 해경청장에게 전화를 걸어 "해경 특공대를 투입해서라도 인명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했다고 거듭 주장했다.

종합하면 박 전 대통령이 김 전 청장과 통화를 하고 있을 때, 동시에 민 대변인이 '실시간으로' 언론 브리핑을 통해 대통령 지시사항을 설명하고 있었다는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다. 

대통령이 지시를 하기도 전에 대변인이 먼저 대통령 지시를 발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1분 1초가 급박한 상황에서 '대언론용 대통령 지시'가 마련된 이후에 실제로 지시가 이뤄졌다는 추측도 가능하다.

또 다른 의혹도 있다. 2015년 세월호 특조위 1차 청문회에서는 박 전 대통령의 지시 내용이 사후에 추가됐다는 의혹이 나왔다. 김 전 청장이 당시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해경 특공대 투입'과 관련된 지시를 듣지 못했다고 답한 것이다. 실제로 해경 특공대가 세월호 현장으로 출발한 것은 오전 10시 25분이다. 박 전 대통령의 지시와 별개로 이뤄진 조치일 가능성이 크다.

김서중(청문위원): 그러면 통화내용에 대해서 어떤 지시사항이 왔다고 하던가요?

김석균: 그때 "한 명의 인명 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 그 다음에 "엔진룸이라든지 기관실까지 철저하게 수색해서 누락되는 부분이 없도록 하라" 이 두 가지 지시사항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서중: "특공대를 파견해라" 이런 것들에 관한 이야기는 구체적으로 없었군요?

김석균: 그 당시에는 그 두 가지 메시지로 알고 있습니다.

백준무 기자  jm.100@ifocu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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