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러시아정부가 주최하는 제3차 동방경제포럼 참석을 위해 6일 오전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을 통해 출국하고 있다. 2017.9.6/뉴스1

"이런 상황에서는 대화도 불가능하다." 15일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직후 문재인 대통령이 내놓은 언급이다. 대선 후보 시절 햇볕정책을 계승하겠다고 공언한 문 대통령이 달라지고 있다. 미·일 정상과의 연쇄 통화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드러난다. 21일 예정된 문 대통령의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대북 정책의 전환이 구체적으로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17일 오전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양국 간 공조를 더욱 강화하면서 북한에 대해 더 강력하고 실효적인 제재와 압박을 가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날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이 전한 양국 정상 간 통화 내용에는 "북한이 외교적 고립과 경제적 압박으로 몰락의 길로 들어설 것"이라는 강한 표현도 있었다.

또 문 대통령은 "미사일 지침 개정과 첨단 무기 보강을 위한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과 협조에 사의를 표한다"며 "앞으로 관련 협력을 더 긴밀히 해 나가길 기대한다"고도 말했다. 외교적 수단뿐만 아니라 군사적 차원의 대응 또한 강구해나가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문 대통령은 16일 아베 총리와의 통화에서도 대북 압박을 강조했다. 양 정상은 이날 통화를 갖고 국제사회와 함께 유엔 안보리 결의를 철저하게 이행해 북한에 대해 최고 강도의 제재와 압박을 가함으로써, 북한이 대화의 장으로 나올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

문 대통령의 대북 메시지는 9월 들어 수위가 부쩍 올라갔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직후인 15일 문 대통령은 "북한이 우리와 동맹국을 향해 도발해 올 경우 조기에 분쇄하고 재기불능으로 만들 수 있는 힘이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6차 핵실험 직후인 3일에도 "참으로 실망스럽고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이 최근 남긴 일련의 언급들은 정부의 기존 대북 정책 기류와 분명한 차이가 있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햇볕정책을 계승해 대북 포용정책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지난 7월 독일 쾨르버 재단에서의 연설을 통해 '베를린 구상'을 발표한 바 있다. 베를린 구상 역시 북한의 탄도미사일이 발사된지 불과 이틀 뒤에 발표됐지만, 유화 기조는 뚜렷했다. 문 대통령은 당시 "북한의 미사일 도발은 매우 실망스럽고 대단히 잘못된 선택"이라면서도 "남북한 간의 무너진 신뢰를 다시 회복해야 한다. 우리는 이를 위해 교류와 대화를 모색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이 압박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기우는 것은 북한의 무력 시위가 위험 수위에 달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은 총 11차례 이뤄졌다. 대화 제의에 북한의 호응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유화적 접근을 고수한다면 야당에 공세의 빌미를 줄 뿐만 아니라 여론까지 악화될 수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16일 민족화해협의회 대변인 명의의 담화를 통해 "괴뢰당국의 대북정책은 사실상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의 대결 일변도 정책과 다를 바 없다"고 밝혔다. 담화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은) 허황되고 주제 넘은 주장을 담은 정책"이라며 비핵화 협상의 당사자는 미국이라는 인식을 드러냈다.

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문 대통령의 최근 통일·외교·안보 분야 행보에 대해 비교적 정확하게 분석해놓았다"며 남문희 시사IN 기자의 글을 소개한 바 있다. 

남 기자는 "문 대통령은 지금 굴욕을 감내하면서 사실상의 핵보유 국가인 북한과 맞서, 최소한 함부로 취급받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억지력을 확보하기 위해 그 생명줄을 쥐고 있는 미국의 가랑이 밑을 기고 있는 것"이라며 "문 대통령이 대북 압박의 첨병 노릇을 하는 게 절대 자기 개인의 의사만으로 자발적으로 행하는 것이라 보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북한을 움직일 독자적인 지렛대가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당장은 미국과의 대북 압박 공조에 전념할 수 밖에 없다는 의미다. 

정부가 대북 압박에 무게를 둠에 따라서 한동안 북한과의 강대강 대치 국면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당장 대북 인도적 지원 계획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을 맡고 있는 홍익표 의원도 15일 "시기와 물량에 대해서 다소 조절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21일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북한에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 지 관심이 모이는 상황이다.

백준무 기자  jm.100@ifocu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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