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국무총리가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박지원 국민의당 의원의 대정부질문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17.9.12/뉴스1

지난달 종합격투기 선수인 코너 맥그리거와의 이벤트 경기로 화제를 모았던 플로이드 메이웨더는 세계 최정상의 권투 선수다. 메이웨더는 신의 경지에 다다른 방어와 회피 기술로 챔피언 벨트를 차지했다. 경기 직후에도 상처 하나 없이 말끔한 얼굴로 '프리티 페이스'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링 위에 메이웨더가 있다면 국회 대정부질문에는 이낙연 국무총리가 있었다. 11일 시작된 대정부질문의 관전 포인트는 9년만에 이뤄진 여야의 공수교대다. 이 총리는 잔뜩 벼리고 벼린 질문들을 퍼붓는 야당 의원들의 공세를 유유히 피했다. 눈길을 끈 이 총리의 '대화의 기술'을 권투에 비유해 정리했다.

①카운터(counter)

상대방이 공격하는 찰나의 순간, 역으로 거리를 좁히며 상대방을 격침시키는 카운터 펀치는 권투 경기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정확한 타이밍의 카운터 공격은 상대방에게 두 배로 충격을 안기는 법이다.

황주홍 국민의당 의원은 11일 "한국은 삼권분립 국가가 아니"라며 "여권 실세들이 법원을 공개적으로 성토하는데, 공식 입장 하나 내놓지 못하는 대법원이 무슨 삼권의 한 축이냐"고 물었다. 만기출소한 한명숙 전 총리를 옹호하는 더불어민주당의 반응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의도였다.

이에 이 총리는 "조금 전에 우리는 삼권분립을 체험했다"며 "대통령이 지명한 헌법재판소장이 국회에서 인준받지 못했지 않느냐. 삼권분립은 살아있다"고 답변했다.

직전에 이뤄진 김이수 헌재소장 후보자의 임명동의안 부결 사태를 예로 든 것이다. 정부 입장에서 여소야대의 한계를 경험한 순간을, 삼권분립의 실현이라는 야당의 관점으로 재해석한 이 총리의 순발력이 빛을 발했다.

이 총리는 12일 김영우 바른정당 의원의 공세 또한 여유롭게 받아쳤다. 김 의원은 이날 "문재인 대통령이 절차적 정당성을 언급하며 사드 배치에 너무 시간을 끌었다"며 "미국이 한국 정부를 의심하고 불안해한다"고 맹비난했다.

이 총리는 "법적 절차를 중요시하는 것은 미국이 한국에 알려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라며 "미국도 충분히 이해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의원은 "총리와 견해 차이가 있는 것 같다"며 말을 줄였다.

②위빙(weaving)

위빙은 몸을 전후좌우로 숙이며 상대의 주먹을 흘려보내는 기술이다. 이낙연 총리가 곤란한 질문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농담으로 흘려보내는 장면들은 위빙을 연상케 했다.

박대출 자유한국당 의원은 11일 이낙연 총리에게 "최근에 MBC나 KBS에서 불공정 보도하는 것을 본 적 있느냐"고 물었다. 이 총리는 "잘 안 봐서 모른다"고 짧게 답했다.

뜻밖의 대답에 본회의장에 웃음이 터지자 당황한 박 의원은 "뉴스 좀 보라. 언론 노조가 장악한 방송이 공정하다고 볼 수 있느냐"며 호통쳤다. 이에 이 총리는 "꽤 오래 전부터 좀 더 공정한 채널을 보고 있다"며 "보도를 경험했던 사람으로서 무엇이 객관적인 보도인지는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또한 이 총리에게 송영무 국방부 장관의 '전술핵 검토' 발언을 따져 물었다. 노 의원이 "(송 장관이) 정신 나간 분이 아니지 않느냐"고 묻자 이 총리는 "국회의원을 꽤 오래 했던 저도 국회에 나오면 정신이 나갈 때도 있다"고 받아쳤다. 

③클린치(clinch)

상대방을 재빨리 껴안아 옴짝달싹하게 하지 못하게 하는 클린치는 상대의 공격 흐름을 끊어버리는 고급 기술이다. 이낙연 총리 또한 질의자들이 쉽사리 긍정할 수 없게 반문하는 전략을 수차례 이용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11일 외신보도를 인용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한국이 대북 대화를 구걸하는 거지 같다'고 했다"며 "전략적 왕따가 안보 전략이냐"고 공격했다. 이 총리는 "김 의원이 한국 대통령보다 일본 총리를 더 신뢰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의원이 12일 "백악관은 '한국 정부가 미국산 첨단 무기의 대량 구매를 승인한다'고 발표했다. 우리 정부는 왜 사실을 숨기나"고 질문했을 때도 이 총리는 '클린치'를 시도했다. "박 의원이 청와대보다 백악관을 더 신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한 것이다.

하지만 '정치 9단'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박 의원은 "지금까지 백악관 말이 다 맞았다. 백악관이 더 신빙성 있게 말하고 있다"고 카운터를 날렸다. 

백준무 기자  jm.100@ifocus.kr

<저작권자 © 포커스데일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