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포커스데일리) 이명박(MB)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의 특수활동비 상납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이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을 5일 재판에 넘겼습니다. 김백준 전 기획관은 MB의 집사로 불리는 인물입니다. 

검찰은 김 전 기획관을 기소하면서 MB를 '공범이자 주범'으로, 김 전 기획관은 '방조범'으로 적시했다고 합니다. 사실상 국정원 특활비 상납을 지시한 사람이 이 전 대통령이라는 의미입니다. 

MB측은 이에 대해 강력히 반발했습니다. 이들은 '17대 대통령실' 명의로 낸 입장문에서 "사실 관계에서도 크게 벗어나 있지만 그 절차와 법적 논리에서도 상식을 벗어나 있다"며 "경악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거듭 밝히지만 이 전 대통령은 국정원 특활비와 관련해 그러한 시스템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며 MB를 주범으로 규정한 데 대해 "모욕을 주기 위한 전형적인 짜맞추기 수사"라고 강조했습니다.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국정원의 특활비 상납에 대해 MB측은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반해, 자유한국당은 과거 정부에서도 있었던 '관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MB측과 자유한국당의 주장이 엇갈리는 셈입니다. 좀더 자세히 들여다 보겠습니다.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지난 25일 한겨레 팟캐스트 '더정치'에서 "국정원 특활비 지출은 지금까지 관례처럼 어느 정권에서든 특활비 지출은 이뤄지는 건데, 왜 유독 지난 정권과 지지난 정권만 딱 핀셋처럼 짚어서 그 쪽에만 특활비 집행을 문제 삼아서 수사를 하느냐"고 말했습니다. 

김 원내대표는 검찰의 국정원 특활비 상납 수사를 "정치보복적 의미가 다분하게 깔려있는 것"으로 규정하면서 "적폐청산 측면에서 특활비를 문제 삼는다면 그건 DJ 정권과 노무현 정권에서 개인이 착복하거나 사익을 추구한 것에 대해서도 처벌은 공평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시스템이 있는 지도 몰랐다"는 MB측과 "어느 정권에서든 관례"였다는 한국당의 주장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지점입니다. "어느 정권에서든 관례"라는 말은 정치권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는 의미입니다. 한국당 의원들도 알고 있는 국정원 특활비 상납을 서울시장과 3선 의원을 역임한 이명박 전 대통령이 몰랐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결과적으로 누구 하나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셈이 됩니다. 혹은 두 쪽 다 거짓말을 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현재 한국당의 주류는 옛 친이계입니다. 홍준표 대표는 이 전 대통령과 친분이 두텁습니다. 김성태 원내대표 역시 옛 친이계 인사입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권성동 의원은 MB 청와대에서 민정수석실 법무비서관을 지냈고, 장제원 수석대변인은 MB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몸담기도 했습니다.  

이상합니다. 같은 주장을 펼쳐야 할 이들이 전혀 다른 주장을 펼치고 있는 셈입니다. 이유는 이들의 목적이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MB측은 MB의 사법처리를 피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한국당은 이를 '정쟁'으로 몰고 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MB측 입장입니다. 이들이 "관행이었다"고 주장한다면 사법처리를 피할 길이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국정원 특활비를 받은 사실을 인정하는 셈이니까요. 이같은 행동이 불법이라는 점은 논란의 여지가 별로 없습니다. 

김백준 전 기획관이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 금액은 4억원입니다. 또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이 전달했다고 고백한 금액은 1억원입니다. 검찰은 이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및 국고손실 혐의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특정범죄가중법은 뇌물수수의 수뢰액이 1억원 이상인 경우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 국고손실이 1억원 이상 5억원 미만인 경우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법원의 판단은 현재로서는 알 수 없지만, 유죄로 판결될 경우 중형은 불가피합니다. 

한국당의 주장처럼 과거 정부에서도 관행이었다고 몰고 가봐야 MB측 입장에선 별다른 실익이 없는 셈입니다. DJ나 노무현 정부에서도 특활비 상납을 받았다는 구체적인 증언 등이 나온 바 없고, 설령 있었다고 하더라도 공소시효가 지났거나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 전 대통령은 올해로 77살입니다. 정정하다고 하지만 인생 마지막을 감옥에서 보내게 생긴 판에 과거 정부 문제를 트집잡아 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런 시스템이 있는 지 몰랐다"고 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자유한국당의 입장은 좀 다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이후 최악의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지지율은 좀처럼 오르지 않는데 지방선거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부산·경남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텃밭이었던 대구·경북에서조차 더불어민주당에 밀린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보수 지지층을 결집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들에게 가장 좋은 먹잇감은 역시 '노무현 정부'입니다. 자유한국당은 지난해 11월 "문재인 정권과 국정원은 모든 역대 정부의 국정원 특수활동비 전체를 공개해 국민 검증을 받으라"고 주장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의 청와대 특수활동비 횡령 의혹에 대해 엄중한 검찰수사를 촉구한다"고도 했습니다. 

이들이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를 '정치보복'으로 규정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보수 지지층을 결집해 문재인 정부와 명확한 각을 세우는 것, 그리고 검찰 수사를 '정쟁'으로 몰고 가는 것, 전형적입니다. 

정치의 세계는 냉혹합니다. MB가 조사를 받게 되고 법정에 서게 되면 그 또한 한국당으로서는 반등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폐족'으로 평가받았던 친노가 재기한 것처럼 말입니다. 어쩌면 한국당은 그런 상황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참고 : 그렇다면 노무현 정부와 김대중 정부는 국정원 특활비를 상납받았을까?

현재로서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을 지냈던 유인태 전 의원은 지난해 11월 "제가 알기로 김영삼 정부 때까지는 (국정원 특활비를) 쓰는 게 관행이었다"며 "박지원 의원이 증언한 바에 의하면 김대중 정부부터 없어졌다고 했다"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는 "우리 정부에서는 일체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또 청와대 특활비 사용 내역에 대해서도 "노무현 대통령이 처음 취임해서 '우리 역사에 당당하자, 투명하자, 그러니까 특활비 전부 내역을 적어 기록관에 남기자'(고 했다)"며 "우리 때 쓴 특활비 내역은 국가기록원에 다 보관이 돼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해당 정부에 몸담았던 인사의 발언인 만큼 100% 신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일부 여당 인사들은 "그랬다면 이명박 정부가 넘어 갔겠느냐"는 얘길 하기도 합니다. 이명박 정부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탈탈' 털었던 만큼, 국정원 특활비를 상납받았다면 그냥 넘어가지 않았을 거라는 얘기입니다. 

김대중·노무현 두 전임 대통령의 의지와 별개로 청와대 관계자들이 암암리에 이를 사용했을 가능성은 남아 있습니다. '시크릿파일 반역의 국정원'의 저자인 김당 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은 지난해 10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정원 특활비 청와대 상납은 DJ정부 때 없어졌다가 노무현 정부 때 부활했다. 지금 문재인 청와대에도 특활비 사용한 참모들이 있다. 김만복(전 국정원장) 조사하면 다 나온다"라고 적기도 했습니다. 

김도형 기자  namuui@ifocu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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