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과 활짝 웃는 모습. (문재인후보 캠프 제공) 2012.9.16/뉴스1

문재인 대통령이 1일 국회에서 2018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진행했다. 지난 6월 추가경정예산안 시정연설에 이어 두번째로, 임기 첫해에 두차례 시정연설에 나선 것은 문 대통령이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시정연설에서 '사람중심 경제'를 여러 차례 언급했다. 문 대통령의 시정연설은 한마디로 '신자유주의와의 결별'이었다. 문 대통령이 이날 강조한 공공부문 강화와 초고소득자·초대기업에 대한 증세 등은 지난 20년간 추진돼 온 신자유주의 정책과의 결별 인사다. 

신자유주의는 IMF 외환위기를 거치며 본격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공기업 민영화 등 공공부문의 축소, 법인세 감세 등을 통한 낙수효과 추구, 노동 유연화, 친기업적 규제 완화 등 신자유주의의 정책은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시작해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우리가 진짜 무너진 건, 그 핵심은 노동이다… 노동의 유연성을, 정리해고를 받아들인 것인데…, 아웃소싱을 우리가 불법이라고 규정해서 잘라내지를 못하니까 정부의 칼이 현장에서 파업하는 사람들한테 겨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유고집 '진보의 미래-다음 세대를 위한 민주주의 교과서'에서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비서실장과 민정수석을 역임했던 문 대통령, 그래서 이날 시정연설에는 문 대통령의 자기반성과 성찰이 담겨 있는 것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IMF 외환위기가 남기고 간 그늘을 지적한 뒤 경제 패러다임 전환을 선언, '사람중심 경제'라는 대안을 제시한 이날 시정연설을 찬찬히 톺아보자.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이 22일 공개한 '1998년 나라사랑 금모으기 운동에 참여한 시민' 모습. 국가기록원은 우리나라의 IMF 및 IBRD 가입일을 맞아 8월 이달의 기록 주제를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을 지원한 국제금융기구(IMF, IBRD), 기록으로 보다'로 정하고 관련 기록물을 오는 23일부터 누리집을 통해 서비스한다. (국가기록원 제공) 2016.8.22/뉴스1

◆ IMF의 그늘…"외환위기가 바꿔놓은 사회경제 구조 국민 삶 무너뜨려"

문 대통령은 먼저 지난 1997년 IMF 외환위기를 언급하며 연설을 시작했다. 

"우리 국민 모두의 삶을 뒤흔들었던 역사적 사건이었다"고 당시를 얘기한 문 대통령은 '대대적인 금모으기 운동' 등을 지적하며 "그야말로 피눈물 나는 세월을 견디고 버텨 위기를 극복해냈고, 국가경제는 더 크게 성장했다"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세계 9위의 외환보유액과 역대 최고수준의 신용등급 등을 언급하며 "한국경제는 국가부도사태를 맞았던 그때와는 완전히 달라졌다"고 했지만,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에 생긴 그늘을 더 강조했다. 

"후유증은 국민들의 삶을 바꾸어버렸습니다. 저성장과 실업이 구조화되었고, 중산층이라는 자부심이 사라졌습니다. 송두리째 흔들린 삶의 기반을 복구하는 것은 오로지 개인의 능력과 책임에 맡겨졌습니다. 작은 정부가 선(善)이라는 고정관념 속에서 국민 개개인은 자신과 가정을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해야 했습니다.

과로는 실직의 공포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감당해야 하는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나의 실패를 내 자식이 다시 겪지 않도록 자녀교육과 입시에 모든 것을 쏟아 부었습니다. 선배 세대들의 좌절은 청년들로 하여금 전문직이나 공공부문 같은 안정적인 직장을 열망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중략) 외환 위기가 바꾸어놓은 사회경제구조는 이렇듯 국민의 삶을 무너뜨렸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에 범람한 신자유주의적 정책의 폐해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은 상품시장 뿐만 아니라 금융시장 개방, 공기업 민영화와 노동 유연화 등을 요구했고, 우리는 이를 받아들였다. 

2008년 20.5%였던 법인세 실효세율은 이명박 정부를 거치며 2010년 16.6%로 떨어졌고, 지난 해까지 7년 연속으로 16% 안팎에서 맴돌고 있다. 2011년 도입된 구조조정촉진법은 기업의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를 쉽게 만들었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것처럼 촛불집회는 단순히 박근혜 정부에 대한 안티테제로 등장한 것은 아니었다. 신자유주의적 사회가 만들어 낸 고단한 삶에 대한 고발이었다. 문 대통령 역시 이를 지적했다.

"그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개인의 힘만으로는 고단한 삶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고발이었습니다. 국민의 삶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자는 선언이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제18대 대통령 후보가 17일 후보 확정 후 첫 공식일정으로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에서 참배를 마친 뒤 '사람이 먼저인 세상 만들겠습니다'라고 방명록을 작성했다. 2012.9.17/뉴스1

◆ 경제 패러다임 전환…"사람중심 경제는 우리와 후대를 위한 담대한 변화"

문재인 대통령은 이어진 연설에서 '사람중심 경제'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지난 2012년 '사람이 먼저다'라는 대선 슬로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람'은 문 대통령의 정치를 관통하는 일관된 키워드다. 

문 대통령은 "사람중심 경제는 우리 자신과 우리 후대들을 위한 담대한 변화"라면서 "저는 바로 지금이 변화의 적기라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20년 전 우리는 국가부도를 막고 외채를 상환하기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스스로 변화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변화를 요구하는 국민의 뜻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합니다. 또한 변화의 기대가 우리 경제에 활력을 주고 있습니다."

문 대통령은 '경제 패러다임의 전환' 역시 선언했다. 기존 재벌대기업 중심의 경제에서 탈피,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겠다는 것이다. 

"'사람중심 경제'는 우리 경제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것입니다. 재벌대기업 중심 경제는 빠르게 우리를 빈곤으로부터 일으켜 세웠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어느 나라도 이루지 못한 놀라운 경제발전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정체된 성장과 고단한 국민의 삶이 증명하듯이 더 이상 우리의 미래를 보장하지 못합니다."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곳곳에서 드러나는 상황에서, 신자유주의의 가장 큰 수혜자였던 재벌대기업을 통한 경제성장이 대안이 될 수 없음을 역설한 것이다. 

지난 보수정권이 주창해 온 '낙수효과'를 통한 경제성장은 사실상 허구였음이 밝혀지고 있다. 

국회 기재위 소속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0대 기업의 '연결재무제표'를 분석한 결과, 상위 30대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은 652조 3812억원으로 지난 2014년(501조 8017억원) 보다 150조 5795억원이 더 쌓였다. 

투자는 되레 줄었다. 2016년 30대 기업의 투자액은 415조 8963억원으로 2014년 428조 6402억원에 비해 12조 7440억원 감소한 것이다. 사내유보율과 사내유보금, 토지보유액 등은 증가했지만 투자는 오히려 줄인 것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문 대통령은 말했다. "'사람중심 경제'는 경제성장의 과실이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가는 경제입니다. 일자리와 늘어난 가계소득이 내수를 이끌어 성장하는 경제입니다. 혁신창업과 새로운 산업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경제입니다. 모든 사람, 모든 기업이 공정한 기회와 규칙 속에서 경쟁하는 경제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2차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청와대 페이스북) 2017.9.22/뉴스1

◆ '사람중심 경제'…전세계적 저성장 양극화에 대한 문재인의 대안

문 대통령은 연설에서 '사람중심 경제'의 구체적인 방향과 예산안 설명도 진행했다. 문 대통령은 '사람중심 경제'를 △일자리와 소득주도 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라는 세개의 축으로 설명해 왔다. 

문 대통령이 이날 설명한 예산안과 세제개편안은 △일자리 △가계소득 증대 △혁신성장 △국민안전과 안보로 요약이 가능하다. 특히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기도 했다. 

"공공부문이 고용창출을 선도하고, 국민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경찰, 집배원, 근로감독관 등 민생현장 공무원 3만 명을 늘리고, 보육, 요양 등 사회서비스 일자리도 1만2000개 만들겠습니다."

아울러 이같은 예산을 뒷받침하기 위한 세법 개정도 직접 설명했다. 초고소득자와 초대기업을 대상으로 한 증세 방안이다. 

"소득주도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세법 개정도 추진합니다. 초고소득자의 소득세율과 과표 2천억원 이상 초대기업의 법인세율을 인상하는 세법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이를 통해, 서민·중산층,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지원을 보다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부자와 대기업이 세금을 좀 더 부담하고, 그만큼 더 존경받는 세상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이같은 방향은 지난 보수정권이 추진해 온 신자유주의적 정책과는 궤를 달리 한다. 공공부문을 강화하고, 법인세 부담을 늘리는 것.

아울러 문 대통령은 노동 유연화에 대해서도 이미 제동을 걸었다. 박근혜 정부가 2016년 1월 발표한 양대지침의 폐기를 선언한 것이다. 

양대 지침은 저성과자에 대한 해고가 가능하도록 한 '일반해고 지침'과 노조의 동의없이 취업 규칙을 바꿀 수 있도록 한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요건 완화 지침'을 의미한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9월25일 '양대 지침' 폐기를 선언했다. 

이날 시정연설에서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문 대통령은 국회의장 및 각 당 지도부와의 환담 자리에서 올해보다 17.4% 인상된 최저임금 7530원 안착을 위한 국회의 도움을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통령의 제안한 방향은 세계적 흐름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현행 35%인 법인세율 20%까지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고, 영국도 현행 19%의 법인세율을 2020년까지 17.0%로 내릴 계획이다. 프랑스도 33.3%의 법인세율을 25%까지 낮출 예정이다. 노동 유연화 역시 세계적인 추세다. 

다만 '세계적 추세'가 국민 삶의 질적인 성장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신자유주의가 남긴 '저성장'과 '양극화'는 이미 전 세계 국가들의 고민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감을 갖고 답했다.  

"저는 세계가 고민하는 저성장과 양극화 문제에 대해 우리가 선구적으로 해답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합니다. 

국민들과 함께 '사람중심 경제'를 이뤄내면 우리 경제가 새롭게 도약하는 것은 물론, 세계경제에도 희망의 메시지를 던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도형 기자  namuui@ifocu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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