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분홍치마의 넝쿨 감독(좌)과 한영희 감독(우)이 작업실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백준무 기자 jm.100@ifocus.kr

"연이어 슬프고 분통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다큐멘터리 제작 집단 연분홍치마는 지난 2일 페이스북을 통해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들의 근황을 이렇게 전했다.

박종필 감독이 세상을 떠났다. 김일란 감독의 위암 투병 소식이 전해졌다. 그제서야 독립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이들의 고단한 일상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노동자와 장애인, 성소수자, 세월호 유가족 등 연대가 필요한 이들의 싸움을 카메라로 쫓아온 감독들 역시 지쳐 있었다.

지난달 12일 연분홍치마는 '당신이 기다리는 다큐멘터리의 제작자가 되어주세요 600 (당기다 600)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당기다 600'은 계좌이체 후원자 600명을 모집하는 프로젝트다. "5명이 안정적으로 활동하기 위해서 한명당 120만원씩 최소한 600만원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지속가능한 제작'을 위한 고민이 출발점이다.

연분홍치마는 김일란, 넝쿨, 변규리, 이혁상, 한영희 등 5명의 감독으로 구성된 독립 다큐멘터리 제작 집단이다. 2005년 기지촌 성매매 여성을 다룬 <마마상>을 시작으로 <종로의 기적>(2010), <두 개의 문>(2011), <노라노>(2013)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면서, 한국 다큐멘터리를 대표하는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사진출처=연분홍치마 페이스북>

6일 오후 망원동에 있는 연분홍치마의 작업실을 찾아 한영희 감독과 넝쿨 감독의 이야기를 들었다. 고양이 세 마리가 낯선 이의 방문에 놀라 허겁지겁 몸을 감췄다. 작업에 몰두한 이들 사이의 정적을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메웠다.

연분홍치마는 그동안 한 사람이 작업을 하는 동안 활동비와 작업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기 위해 다른 사람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식으로 운영돼 왔다.

넝쿨 감독은 영화를 완성하더라도 문제라고 말한다. "영화를 다 만들면 곧바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작업 기간 동안 진 빚을 갚으며 연명하게 된다. 작품으로 들어가야 하는 에너지를 다 써버리게 된다."

감독 다섯 명이 각자의 작품 활동을 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작업 기간이 겹치는 경우도 있다. 서로가 서로의 스탭이 되는 연분홍치마의 작업 방식이 이럴 때는 애로사항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빈정 상하는" 일도 생긴다.

넝쿨 감독은 "작년에 세 작품이 동시에 작업 중이었기 때문에 각자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작업도 해야 되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내가 이번에 아르바이트를 하니까 다음번엔 저 사람이 해야 되는데', '저 사람은 왜 이렇게 작업 기간이 길어지는 거지?' 하면서 감정이 다치는 일들이 생겼다"는 것이다. 

현재 프로젝트는 "목표로 했던 600명 중에서 250명 정도 더 모아야 되는 상황"이다. '당기다 600'이 끝은 아니다. 독립 다큐멘터리 제작자들의 '정책 제안을 위한 다큐 작가 모임'에도 참여하고 있다. 

한 감독은 "다큐멘터리 특성상 작업 기간은 2~3년 가량이 걸리는데 지원금액으로는 겨우 밥값 정도만 지불할 수 있다"며 "제작되는 작품 편수에 비해 실질적인 지원 규모는 너무 작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 감독은 "배급과 상영 단계에서의 문제도 있다"며 "장편은 어렵게 개봉이라도 할 수 있지만, 실험영화나 중·단편은 개봉 사례가 많지 않고 플랫폼 자체도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넝쿨 감독 또한 "영화진흥정책이 상업영화에 매길법한 잣대로 독립영화를 지원하는 측면이 있다"며 "독립영화는 문화적·사회적·미학적으로 다양한 층위에서 자기 가치를 지닌 예술"이라고 강조했다.

악전고투의 현장이다. "13년 전에는 카메라를 어떻게 쓰는 지도 몰랐다"는 이들이 아직도 다큐멘터리를 놓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두 개의 문> 같은 경우 어떤 일이 기적처럼 일어났냐면, 국화꽃 한 송이를 들고 찾아오는 거죠.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비극에 대해 애도하고 추도하며 '남일당' 현장에 가서 꽃을 두고 오는. 마치 추모의 행렬 같은 느낌으로."

영화 관람이 용산 참사의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목소리로 이어지기도 했다는 것이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동시에 '시민'의 시선으로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함께 논의한다. "극장 안에서의 경험을 사회적 의미로 외연화한 경험"이야말로 연분홍치마를 포함한 모든 독립 다큐멘터리 제작자들을 움직이는 힘이다.

연분홍치마는 숨가쁜 스케줄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안녕 히어로>가 9월에, <공동정범>이 내년 1월에 개봉 일정이 잡혀 있다. 연출을 맡은 한 감독은 <안녕 히어로>를 "쌍용차 해고노동자 아빠를 둔 소년의 성장담"이라고 소개했다. SK브로드밴드 통신설비 하청 노동자들의 투쟁을 다룬 변규리 감독의 <플레이온>은 현재 공동체상영으로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작업실 창가에 내걸린 무지개 깃발이 선풍기 바람에 펄럭 휘날렸다. 연분홍치마의 여름이 이렇게 가고 있다.

백준무 기자  jm.100@ifocu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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