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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봉혁기자의 인물탐구]김한규 21세기 한중 교류협회장
  • 최봉혁 기자
  • 승인 2022.04.13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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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봉혁 기자 = 사진여행. 포토뉴스☆ 김한규장관

(서울=포커스데일리) 최봉혁기자 = 한중수교 30주년 중국원로 정치인들에게  한국판 헨리 키신저 불리는  김한규(전 총무처 장관) 

김한규 88패럴림픽 실무부위원장은 1940년 경상북도 달성군 성서면(현 대구광역시 달서구)에서 태어났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1981년부터 1988년까지 사회복지법인 홀트아동복지회 회장을 역임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대구직할시 달서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직 국회의원인 한국국민당총재 이만섭 후보를 꺾고 당선됐다. 같은 해 대한민국 국회 올림픽지원특별위원회장 겸임간사로 활동했다.

패럴림픽 역사상 최대 규모인 61개국 4,301명의 선수단이 참가한 최초의 성공적인 대회였다. '도전과 극복 · 평화와 우정 · 참여와 평등'을 대회 이념으로 내세웠다. 그리고 '우정 어린 대회 · 검소한 대회 · 특성 있는 대회'라는 3대 목표를 차질 없이 성실하게 수행했다.

패럴림픽이 끝나고 나서 장애인복지의 패러다임이 바뀌었죠, 장애 당사자주의가 한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때부터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고 모든 것들이 새롭게 변화의 시기를 갖게 됐다.

김회장은 88 대회가 끝난 이듬해인 1989년 12월에 여당인 민주정의당소속 국회보사위원(간사)으로서 장애당사자들의 요구에 의해 '심신장애자복지법'을 '장애인복지법'으로 개정해 장애자를 장애인으로 명칭을 바꾸기도 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대구직할시 달서구 갑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1994년 대한민국 국회 국가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되었다. 1995년 민주자유당 총재비서실장에 임명됐다.

1996년부터 1997년까지 총무처(현 행정자치부) 장관을 역임했다.

김한규 21세기한중교류협회장은  "올해는 한중수교 30주년으로 한중관계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킬 새로운 기회"라고 밝혔다.

김한규 회장은 지난 제13차 한중고위언론인 포럼에서 "한중 수교를 위해 30년 전 양국의 막후역할을 담당했던 한 사람으로서 매우 감개무량하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김영삼 정부 당시 총무처 장관을 역임하기도 한 김 회장은 1992년 성사된 한중 수교의 막후 공신이자 한중 민간외교의 산 증인이다.

김 회장은 "한국과 중국은 코로나 발생 초기부터 중앙정부는 물론 지방정부 간, 그리고 민간 차원에서도 서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라며 "이는 국제적으로도 이웃 나라 간의 바람직한 협조 모델이 됐다"라고 평가했다.

그는 "조만간 코로나19의 사회적거리두기의 엔데믹이 온다면 사람들의 일상생활은 물론 양국 간의 소통강화를 통해 정상을 찾을 것"이라며 "이런 관점에서 오늘 포럼의 주제를 '한중교류협력의 새로운 단계의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한중간 방역협력'과 '한중 문화교류 강화를 통한 양국국민 정서 회복 촉진'을 위한 언론의 역할로 정한 것은 대단히 시의적절하다"라고 평가했다.

김 회장은 "시련을 겪으면 더욱 강해진다는 뜻으로 중국에는 봄을 알리는 매화는 겨울 추위를 이겨낸다는 梅經寒苦(매경한고)란 속담이 있고, '한국에도 고생 끝에 즐거움이 온다는 고진감래(苦盡甘來)' 라는 고사성어가 있듯이 30주년 기념 포럼을 대면으로 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스포츠 외교를 통해 한중 수교에 노력하던 김한규 전 총무처 장관은 "그 당시 중국 지도자들은 겸허하고 진솔하게 한국의 투자와 지원을 요청했다."고 기억했다.

당시 중국 정부는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을 성공적으로 치러 중국에 대한 외부 세계의 인식을 바꾸고 싶었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과 1988 서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경제 발전 경험이 있는 한국의 도움이 절실했다고 한다. 이에 발맞춰 한국 정부 지도자와 기업인들은 과감하게 통 큰 지원을 결정했다.

이런 한국의 통 큰 지원에 중국도 1997~1998년 한국의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 때 호의로 상응했고, 한반도 평화와 안보 측면에서 보이지 않게 한국을 도왔다.

1990년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 한국지원단장을 맡아 중국 고위 인사들과 교류한 것을 계기로 '자타 공인 중국통'이 됐다

21C 한중 교류협회는 2000년 10월 17일 주룽지 당시 총리의 한국 국빈방문 계기로 창립됐다. 중국 측 파트너는 인민외교학회, 국무원신문판공실, 송경령기금회등과 교류협력을 위한 행사를 개최해왔다. 

한편 88패럴림픽의 역사를 재조명해 출판을 앞두고 있는 "어둠을 뚫고 새벽을 열다" 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현재는 21세기한중교류협회 회장, 명지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하고 있다.

최봉혁 기자  fdn7500@ifocu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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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과새벽#88장애인올림픽 실무부위원장#김한규 전)총무처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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