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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인의 만주망명 110주년 기획보도] 만주 독립운동 3세대 활동과 '동북항일연군'
  • 김재욱 기자
  • 승인 2021.07.21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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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열사기념, 관동북항일연군 관련 사진 패널. [사진제공=한국국학진흥원]

(안동=포커스데일리) 김재욱 기자 = 한국국학진흥원과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은 만주망명 110주년을 맞이하여 총12회에 걸친 기획 보도를 진행하고 있다. 제10편은 조국 독립을 위해 만주로 망명한 1세대 독립운동가의 손자를 비롯해 1920년대에 새로 유입된 한인 청년 등 3세대 독립운동가의 활약이다.

만주 망명 1세대 중 만주사회를 개척한 대표적인 인물은 백하 김대락과 석주 이상룡 등이 있다. 그리고 1세대의 아들인 월송 김형식과 동구 이준형을 비롯해 일송 김동삼, 동전 김응섭 등 2세대는 1세대를 보좌하여 독립운동 단체를 결성하면서 1920년대 만주 독립운동을 이끌어간 주역으로 활약했다.

'월송 김형식'

특히 김대락의 아들 김형식은 경학사, 부민단, 한족회, 서로군정서 등에서 활동하다가 1927년 민족유일당 결성운동에 참여했고, 이상룡의 아들 이준형은 한족회 등에 참가하고 1928년 중국공산당 만주성위원회 반석현 책임자로 활동했다. 이처럼 1, 2세대의 독립운동 기반 위에 1930년대 이후가 되면 3세대들이 등장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게 된다. 이준형의 아들이자 이상룡의 손자인 이병화는 경학사 등에서 성장하여 대한통의부, 정의부, 한족노동당 등에 가입하고 고려공산청년회 만주총국 간부를 역임했으며, 1930년 농민봉기를 주도하고 1934년 청선진 경찰 주재소 습격과 관련되어 옥고를 치렀다.

3세대들의 활동이 두드러진 1930년대의 만주 독립운동은 외부적으로 일제에 저항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내부적으로는 좌우이념 갈등에 대응해야 했다.

제로 1919년 사회주의 사상이 유입된 이후 1920년 말 민족유일당운동이 좌절되면서 1930년대가 되면 독립운동계 역시 좌우 양극화와 이념갈등 문제가 심각해지는 경향이 나타난다. 북만주에 근거를 둔 혁신의회가 1929년에 해산되고 김좌진의 신민부 군정파와 아나키즘 세력, 정의부에서 탈퇴한 김동삼 등이 결합하여 한족총연합회를 결성하는데, 이를 이끌던 김좌진이 1930년 화요회 그룹에 소속된 사회주의자에게 암살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 사건을 계기로 김동삼과 이청천 등은 한국독립당을 결성하게 된다. 한편 남만주 지역은 민족유일당운동이 좌절되자 민족유일당조직동맹은 1929년 국민부를 조직하고, 이들은 조선공산당의 ML파를 비롯한 모든 사회주의 운동 정파를 적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이후 이들은 조선혁명당과 이를 위해 활동하는 군대인 조선혁명군을 조직했다.

특히 1930년대 사회주의 운동계열에서는 코민테른의 1국 1당의 원칙에 입각한 무산자계급만의 정당을 조직하라는 ‘12월 테제’의 강령에 따라 조선공산당 지부승인이 취소되고, ML파(마르크스-레닌주의 그룹), 화요회 그룹 등 기존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의 구성원들은 중국공산당 만주성위원회에 개별적으로 가입하여 대거 편입되기도 했다.

이후 1931년 9월 일제에 의해 만주사변이 발발하면서 중국공산당 주도 하에 동만주 4개현에서 항일유격대가 창건되었고, 1933년 9월과 34년 3월에는 동북인민혁명군 1군 독립사와 2군 독립사가 각기 세워져 수많은 재만 한인들이 가입하여 항일전투를 치렀다. 이러한 유격대와 동북인민혁명군, 민족주의계 독립군단인 조선혁명군 등은 연대를 모색하는 등 일제에 맞서 크고 작은 전투를 수행하며 역량이 발전해갔다. 이러한 군단을 모체로 하여 1936년 중반, 중국 동북지역 항일연합부대를 아우르는 동북항일연군이 성립된다. 이를 통해 한‧중 양 민족의 단결과 연합 항일투쟁이 본격화됐다.

동북항일연군에서 중추적 역할을 수행한 한인 출신 가운데 경북 출신 인물들도 두드러진다. 허형식은 구미 출신으로 의병장 왕산 허위의 집안 조카이다. 그는 반일유격대와 동북인민혁명군을 거쳐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 3군 군장과 9군 정치부 주임 등을 역임했고, 3로군 총참모장으로 활동하다가 1942년 8월 흑룡강성 경안현 청풍령에서 전사했다. 그외 한호(김영로, 안동), 김정국(예천), 류만희(안동), 강신태(강건, 상주), 배치운(의성)을 비롯해 여성 독립운동가로 김노숙(안동), 이근숙(예천), 배성춘(청도) 등이 있다. 이들은 동북항일연군과 동북항일연군교도려 등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이에 대항하여 일제는 1931년 만주사변과 1932년 만주국 설립 등을 계기로 만주지역에 지속적으로 병력을 증강하는 한편, 탄압과 회유 공작을 전개하여 독립군과 항일군단의 와해를 기도했다.

특히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6사의 보천보 진입전투를 계기로 일제는 1937년 ‘혜산사건’을 일으켜 동북항일연군과 조국광복회 관계자 739명을 검거하는 등 대대적인 탄압을 강행하기도 했다. 결국 일제와 만주국 군대의 토벌이 강화되자 1940년 2월 1로군 사령관 양정우가 전사하면서 동북항일연군은 거의 와해됐고, 남겨진 군인들은 소련 연해주로 이동하여 ‘동북항일연군교도려’로 편제, 소련군 산하 ‘국제 홍군 88특별여단’으로 정식 개편됐다. 이로써 만주에서의 무장투쟁은 사실상 종결됐던 것이다.

김재욱 기자  jukim6162@ifocu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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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한국국학진흥원#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만주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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