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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주) 금호 이영희 회장, ‘신뢰와 성실로 맨 주먹에서 연매출 1천억 원까지’부채안고 회사 인수…폭스바겐 등 유명 자동차회사에 부품 납품
직원 200여명, ‘5천만 불 수출의 탑’ 목표…대통령상 2번 수상
인도네시아에서 성공,중국에서 사기로 빈털털이…’오뚝이’ 인생
  • 김정호 기자
  • 승인 2021.01.09 15:00
  • 댓글 0
주식회사 금호 이영희 회장.

(부산=포커스데일리) 김정호 기자 =  신뢰와 성실을 바탕으로 맨 주먹에서 시작해 직원 200여 명에 연매출 1천억 원을 달성한 뚝심의 중견기업인이 있다.

울산시 울주군 두서면 주식회사 금호(이하 금호) 이영희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이 회장은 경남 하동 부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초등학교 때 급격히 가세가 기울어 힘들게 학업을 이어갔다. 어렵게 학업을 마친 후 서울에 있는 무역회사에 취업을 했다. 그곳에서 그는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다. 그때 인연을 맺은 지인들의 권유로 인도네시아로 건너갔다 그 곳에서 그는 뛰어난 영업수완을 발휘해 많은 돈을 벌었다. 그 곳에서 ‘황금시대’를 풍미했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그에게도 시련은 찾아 왔다. 고국인 한국의 IMF와 인도네시아 화교폭동으로 한풀 꺾이게 된다. 폭동으로 교민들이 잇따라 죽어나가자 그는 1997년 한국으로 황급히 귀국했다.

귀국한 후 그는 지인의 권유로 중국으로 건너가  소주에 있는 사출공장을 인수한 후 사기를 당하고 맨손으로 귀국했다. 그동안 열과 성을 다해서 모았던 재산을 모두 날리고 무일푼 빈털털이 신세가 됐다.

차비가 없어 외출도 할 수없었던 그는 ‘성실함과 능력’을 알아주는 지인의 소개로 월급쟁이 사장으로 자동차 부품공장에 입사하게 된다.

그 후 그는 그 회사의 모든 부채를 끌어 안고 회사를 인수해 정상화를 시켰다.

이 회사를 포드, 클라이슬러, 폭스바겐 등 세계굴지의 자동차 회사에 자동차 부품을 공급하는 회사로 키웠다.

그 결과 직원 200여명에 연매출 1천억 원의 중견기업으로 키웠다. 수출 3천만 불 탑을 수상하고 5천만불 탑을 향해 고속성장을 하고 있다.

그는 이런 성과로 지식경제부 장관 표창을 받았고, 대통령상도 두 차례나 수상했다.

끊임없는 혁신과 신뢰를 바탕으로 내실을 갖추면서 지구환경을 생각하고 미래산업을 주도하는 외유내강형의 경영인으로 불리는 그를 8일 오후 그의 사무실에서 만나보았다.

주식회사 금호 전경.

- 폭스바겐, 클라이슬러, 포드라고 하면 세계 최대의 자동차 회사인데, 금호가 이런 유명회사에 자동차 부품을 납품한다고 들었습니다. 금호가 어떤 회사인지 자세한 설명을 부탁합니다.

“금호와 계열사인 금호정밀은 자동차 엔진 및 변속기 관련 주물부품들을 전문적으로 가공 생산하는 업체입니다. 그리고 계열사인 금호환경은 음식물쓰레기처리기계를 만들고, 음식물쓰레기를 처리하는 친환경업체입니다.

금호와 금호정밀의 주요 생산품은 각종 배기매니홀드,디프케이스 하우징,기어류,머플러프랜치류 등입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등 국내업체에도 납품하지만, 주로 미국이나 독일로 수출을 합니다.

특히, 금호는 미국의 클라이슬러와 포드 자동차에 메뉴폴더라는 아이템을 100% 수출하고 있습니다.

김해에 있는 금호정밀은 독일의 폭스바겐에 자동차 100만대 분의 부품을 수주해서 수출하고 있습니다.

곧 BMW와 BENZ에 들어가는 부품도 생산할 예정입니다."

- 이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한 자동차회사에 부품을 납품하면서 1년 매출이 일천억 원을 넘을 정도로 성장을 했는데, 처음부터 이렇게 큰 규모의 회사는 아니었을거라고 봅니다. 회사가 이렇게 성장한 배경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요

“맞습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많은 액수의 수출을 한 회사는 아니었습니다. 자금사정이 어려워 부도 직전에 있었던 회사였습니다. 그런 회사를 인수해 열심히 하다보니 자연스레 이렇게 큰 과실을 수확할 수 있는 회사가 됐습니다.

무엇보다도 직원들이 열심히 해주었습니다. 그런 덕분에 수출을 조금씩 늘려 가다보니 이렇게 수출규모가 커졌습니다. 2019년에는 3천만 불 수출의 탑을 수상했습니다. 지난해에 5천만 불 수출탑 수상이 목표였으나 갑작스런 COVID-19사태로 인해 목표 달성이 힘들게 됐습니다.”

- 국내 납품보다 해외수출이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요, 이처럼 수출이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수출이 늘어난 이유는 무엇보다도 직원들의 열정이 가장 큰 요인입니다. 여기에 수입회사에서 원하는 품질에 딱 맞게 부품을 제조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납품기일을 한 번도  어기지 않고 맞추다보니 자연스레 수출이 늘어나게 됐습니다.

저희 회사의 자랑은 지금까지 고객회사인 포드 클라이슬러 폭스바겐 등으로부터 한 번도 클레임이 발생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이것이 금호의 장점이자 수출을 획기적으로 늘리게 한 요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성실성과 신뢰입니다.”

금호 공장내부 전경.

- 이처럼 수출량이 많으면 직원들 뿐만아니라 이영희 회장님도 아주 바쁠 것 같은데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나요?

 “매일 새벽 2시와 3시 사이에 부산 해운대에서 울주군에 있는 금호로 출근을 합니다. 출근을 한 후 직원들과 미팅을 하면서 그들의 애로사항을 듣고 공유하며 한결같은 마음으로 직원들에게 최선을 다할려고 합니다. 무엇보다 솔선수범을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수출량이 많으면 직원들 뿐만아니라 이영희 회장님도 아주 바쁠 것 같은데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나요?

특히, 직원들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그러다보니 직원들이 큰 불만 없이 회사의 방침에 잘 따르고 있습니다.

한가지 예를 든다면, 지금 아주 추운 겨울인데요 사무실은 난방을 가동해 따뜻하게 온기를 유지하도록 합니다. 그러나 제 방은 히터를 틀지 않습니다. 물론 여름에도 에어컨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저 혼자 있을 때는 전등도 절반만 켜 놓습니다. 제가 솔선수범하니까 직원들도 자연스레 절약을 합니다.

금호에서 오전 업무를 보고 오후에는 금호정밀과 금호환경 등의 순으로 공장을 방문합니다. 그곳에서도 역시 직원들과 허심탄회하게 서로의 애로사항을 이야기합니다. 만약 문제점이 있으면 서로 바로 잡기위해 노력을 합니다.”

- 직원들에게 솔선수범하며 아주 열심히 성실하게 회사를 운영하고 계신데요, 어린 시절이 인생에 영향을 많이 끼친다고 하는데, 어린시절은 어떻게 보냈습니까.

“경남 하동 진교가 고향입니다. 집안형편이 초등학교 때부터 기울어지기 시작해 중학교때부터 상당히 어려워졌습니다. 아버지가 당시 하동군수에 3번이나 출마해 낙선했습니다, 그 바람에 경제사정이 어려워졌습니다. 궁핍하다 보니 어린 저도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학교를 중도에 그만 둘려고 몇 번이나 생각을 했습니다. 그 당시 학교에 가지 않고 부산으로 내려와 많은 방황을 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권유와 도움으로 학업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학교를 다니면서 사회경험을 쌓고 군대 제대후 서울에 있는 무역회사에 취업을 했습니다.”

-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를 하는 회사에 취업을 했나요?

“서울에 있는 무역회사에 취업을 했습니다. 외국업체로부터 수출주문을 받고 국내 회사에 주문을 하는 일종의 바이어였습니다. 제가 일하는 회사는 주로 신발이나 텐트, 야구글러브 등을 취급했습니다.제가 수출물품 주문을 발주한 곳에서 직접 수출물품의 품질을 검사하는 무역품질검사관의 역할도 함께 했습니다.

당시에는 검사관의 제품품질 검사 ‘OK’가 있어야 수출을 할 수 있고, 은행으로 부터 자금을 융통할 수 있었습니다. 업무 성격이 그렇다 보니까 로비가 많이 들어 왔습니다. 돈도 많이 들고 왔는데 받지를 않았습니다.

청탁과 로비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오직 회사를 위해서 열심히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제가 제품에 ‘OK’를 하지 않고 재검사를 시키면 수출도 어려워질뿐더러 은행으로부터 자금도 융통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의 로비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오로지 원칙에 입각해 일을 처리했습니다.

그때문인지 바이어들이 제품의 품질에 대한 불만이 전혀 없었다. 클레임이 아예 들어 오지 않았습니다.”

2018년 알제리 수상의 초청으로 이낙연 당시 국무총리와 함게 무역사절단 일원으로 방문해 기념사진을 찍었다./사진제공=금호.

- 대기업에서 일을 하다 갑자기 인도네시아로 가서 사업을 하셨던데 그곳으로 가게된 계기가 있습니까.

“우리나라에 88올림픽이 열리면서 국내 근로자들의 임금이 급격하게 올라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국으로 와야 할 수출주문이 동남아 지역으로 옮겨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인도네시아에 가장 많이 몰렸습니다. 당시 친했던 바이어들도 거래처를 동남아로 옮겼습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한국에 있지말고 인도네시아로 오라고 권유했습니다. 오면 도와주겠다고요.

그래서 1989년 그들의 말을 믿고 무작정 인도네시아로 갔습니다.

그 곳에 도착하니까 아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더라고요. 그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인도네시아 정착 초기에는 수출물품을 담는 박스를 만드는 박스제조공장에 영업직으로 취직을 했습니다. 주로 신발, 화장품, 약 등을 담는 박스를 만드는 공장이었습니다.

신발 박스를 한 달에 백만 개씩 주문을 받았습니다.  공장이 풀가동됐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러다 사출공장을 인수해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주로 TV케이스와 세탁기 냉장고 케이스 등을 만들었습니다.

주변의 도움을 받아 성공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번 돈의 70%를 도움을 주는 지인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더 열정적으로 도움을 주었습니다.

인도네시아에 있을 당시가 저에게는 최고의 전성기였다고 생각합니다. 그 곳에서 좋은 인연도 많이 만들고 큰 돈도 벌었습니다.”

- 회장님의 ‘최악의 시기’가 중국이라고 하셨는데, 어떻게 중국에서 사업을 하게 된 것인가요.

“ 1997년 한국에서는 IMF가 터졌고, 인도네시아에서는 화교폭동이 일어났습니다.  폭동 당시 한국사람들이 많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귀국을 고심하게 됐는데, 때 맞춰 인건비도 상승하고 치안도 불안해서 한국으로 귀국을 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와 잠시 쉬고 있는데 지인이 중국 소주에 사출공장이 있다고 인수를 해보라고 제안해 중국으로 진출했습니다.

중국에서 굉장히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언어장벽 때문에 고용했던 사람들이 나를 이용했고, 회사를 인수하고 자세히 살펴 보니 자금 부분이 ‘허위’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물품 기계 등 회사에 있는 모든 것을 그냥 두고 몸만 한국으로 빠져 나왔습니다.

중국에서의 1년6개월 동안 인도네시아에서 번 돈, 당시 약 15억 원을 모두 탕진했습니다. 저에게는 가장 ‘시련의 시기’였습니다.”

이영희 회장이 2018년 무역사절단으로 알제리를 방문해 이낙연 당시 국무총리와 함께 만찬장으로 입장하고 있다. /사진제공=금호.

-한국에 돌아와서 생활은 어떻게 보냈나요.

“중국에서 모든 것을 탕진하고 한국에 오니 앞이 보이지 읺았습니다. 가슴이  답답해서 외출을 하고 싶어도 무일푼 신세였기 때문에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아들의 돼지 저금통을 깨서 차비를 마련하고 버스를 타고 낙동강으로 가 강변 둑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며 하루 하루를 한숨을 쉬며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지인이 금형회사 영업을 해보라며 추천을 해주었습니다. 입사를 해서 보니 아주 어려운 회사였습니다. 월급도 못받았습니다.  그러나 밥을 먹을 수 있고 차를 타고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 곳에서 평소의 인맥과 제가 가지고 있는 탁월한 영업력을 바탕으로 내 회사라는 주인의식을 가지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입사한 지 얼마되지 않아 자동차 회사에 들어가는 금형을 수주했습니다. 그것을 수주 받고 나니까 회사가 아주 잘 돌아갔습니다.

이렇게 회사가 잘되도록 만들어 놓으니까 갑자기 회사에서 나가달라고 했습니다. 배신감을 느끼고 회사를 그만 두었습니다."

- 쓰러져 가는 회사를 살려놓고 해고를 당했는데요, 억울함과 배신감이 많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또 다시 실직자 신세가 됐는데…

“출근할 곳이 없어 집에서 놀고 있는데, 금호정밀이 영업상태가 아주 힘들다고 영업담당으로 오라고 했습니다. 그때가 2005년 입니다.

저의 영업력과 열정을 눈여겨 본 지인이 소개를 했다고 합니다.

금호정밀은 당시 심각한 부채를 가진 회사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주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저보고 회사를 인수해 운영을 해볼 의향이 없느냐고 제안을 했습니다.

저는 두말하지 않고 이 회사를 인수했습니다.

자금사정은 어려워도 주문은 자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향 형님에게 5억 원을 빌려 인수를 했습니다.

인수를 하고 나니 제가 알던 것보다 자금사정이 더욱 안좋은 회사였습니다.

회사를 살리기 위해서는 투자를 받는 길 뿐 이었습니다.

투자를 받기 위해 고민을 거듭하다 지인들을 찾아가 회사 사정을 설명했습니다. 그들의 덕분으로 투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 주던 지인들도 있었습니다.

또, 회사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은행은 대출을 해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이전 사장이 신용불량자라서 신용보증기금에서 대출보증이 되지 않았습니다. 열흘 이상 담당자와 다퉜습니다. 저의 끈질긴 설득끝에 10억 원을 대출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후부터 수출 오더가 들어 오기 시작했습니다."

- 지인들이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줄 정도면 회장님의 신용이 그만큼 좋다는 뜻인데요, 회사를 인수한 후 생각했던 만큼 성장이 됐나요.

“회사를 인수한 첫해에 수출 200만 불을 기록했습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성장을 해오고 있습니다. 한번도 마이너스 성장을 한 적이 없습니다. 3천만 불 수출의 탑도 받았고, 5천만불 수출의 탑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포드와  클라이슬러, 폭스바겐에 자동차 부품과 시트 공급 업체로 선정 되는 등 해외 수출을 기반으로 하는 단단한 기업으로 성장 중입니다.”

경북 안강 두류공단에 설치된 음식물쓰레기처리기.

- 계열사에 금호환경이라는 음식물쓰레기처리업체가 있던데, 친환경 사업을 시작하게 된 배경은 무엇입니까.

“저는 15년전에 이미 전기자동차시대가 올거라고 예상을 했습니다. 만약 전기자동차 시대가 도래하면 자동차 엔진이라든지 각종 부품이 없어지고 자동차부품 산업이 하락의 길을 걷게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음식물 쓰레기처리기계와 자동차시트 공장입니다. 전기차라도 자동차시트는 필요하기 때문이죠.

금호환경을 설립하고 전국의 음식물 쓰레기처리회사는 모두 찾아 다니며 연구했습니다.

15년 전 이것을 생각한 것은 그 당시 공해에 음식물쓰레기를 버렸는데, 언젠가는 그것이 금지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음식물 쓰레기의 해양투기가 금지됐습니다.

그래서 음식물 쓰레기처리 사업이 성공할거라는 자신감을 가졌습니다.

우리회사 기계는 미생물을 이용해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냄새도 나지 않고 오수도 발생하지 않습니다. 100kg의 음식물 쓰레기를 투입하년 7kg의 찌꺼기가 배출되는데요, 이렇게 배출된 지꺼기는 바로 비료로 활용됩니다. ‘꿩먹고 알 먹기죠’”

-경북 안강 두류공단에 대규모 음식물쓰레기처리기가 설치돼 가동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소개를 부탁합니다.

“경북 안강 두류공단에 하루 200톤 규모의 처리시설을 완비하고, 현재 1차로 20톤 처리 규모의 기계가 음식물쓰레기를 처리하고 있습니다.

경북 은해사와 청암사 등 사찰에도 음식물쓰레기 처리기를 설치했습니다. 사찰에서 음식물쓰레기 처리에 고충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료로 설치를 했습니다.

이외도 현재 육군본부로부터 인증을 받고 곧 군부대에도 설치될 예정입니다.

- 캐나다에도 음식물쓰레기처리기계가 진출했다고 들었습니다.

“지난 2019년 4월15일 캐나다 스위프트 매니지먼트 본사에서 스위프트 커넥트의 산두 대표와 음식물 쓰레기처리기계 캐나다 진출과 관련해 기술과 인력 등을 캐나다로 송출하는 업무에 대한 양해각서에 서명을 했습니다.

금호환경은 폐기물 관리 설비에 대한 독점 판매권을 스위프트에게 부여하고, 스위프트는 설비 판매와 고객 확보를 위한 홍보활동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캐나다에 음식물쓰레기처리 기계를 들여가 스위프트 회사 옆에 설치할 계획입니다.

얼마전에 L/C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몇 일 전 서울쪽에 255억원 상당의 음식물쓰레기 처리기를 설치하기로 협정을 맺고 곧 설치 작업에 들어가는 등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지금까지 걸온 길을 생각하면 ‘오뚝이’같은 인생이었습니다. 맨손으로 시작해 연매출 1천억 원이 되기까지 많은 시련이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뚝심과 신뢰, 자신감으로 극복해 왔습니다.

COVID-19로 경제가 어렵지만 이 고비만 잘 넘기면 다시 경제가 살아날거라고 생각합니다.

버는 만큼 사회에 아낌없이 돌려주겠습니다.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특히, 친환경 사업인 금호환경을 잘 만들어서 사회에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김정호 기자  ulruru5@ifocu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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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금호#금호정밀#금호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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