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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계절의 공존 (가을의 창을 열며)
  • 이두남
  • 승인 2020.09.09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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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남(칼럼니스트)

여름과 가을이 공존하는 9월이다. 낮에는 7일을 살기 위해 땅 속에서 7년을 견뎌낸 매미의 울음소리가, 그리고 해질녘엔 가을의 문턱을 알리는 귀뚜라미 소리가 계절의 경계에 있음을 외친다.

이렇게 세월은 빠른 속도로 흘러가고 있건만 올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19의 종식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구인은 모두 입을 가리고 흩어져야 산다는 전대미문의 표어를 내걸고 경계의 눈초리로 서로를 응시하고 있다. 만남의 반가움을 표현하던 악수도, 식구처럼 가까워지기 위해 함께하던 식사도 외면해야 하는 삭막한 풍경이다.

그렇다면 코로나19 사태의 종식은 언제쯤 일까? 지금으로서는 어느 누구도 정확하게 알 수 없고 섣불리 예단 할 수 없기에 이런 저런 전망을 조심스럽게 이야기 할 뿐이다.

코로나19의 위기 상황에서 우리는 또 하나의 엄청난 불청객을 맞이 해야 하는 시간과 마주했다.

눈이 크고 귀와 긴 꼬리를 가르며 누가 기다리고 있기라도 하는 듯 성급히 달려온다, 우리는 이 불청객을 태풍이라고 부르지만 첫 입학 때처럼 가슴에 하얀 손수건을 달고 제각기 다른 이름으로 차례대로 습격해 온다.

각자 맡은 임무가 있는지 이름 마다 제각기 다른 방법으로 지구인을 괴롭힌다. 어떤 이름은 대홍수를 몰고와 지구촌을 물바다로 만들고 산과 집을 무너뜨린다. 또 다른 이름은 힘자랑이라도 하듯 엄청난 힘으로 전신주를 뿌리 채 뽑아 도심을 암흑으로 만들고 풍년의 기대를 일순간에 앗아가 버린다.

이 불청객 태풍을 반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해마다 이 맘 때면 잊지 않고 찾아와 그 위력을 과시한다. 늘 철저하게 대비를 해보지만 자연의 위력 앞에서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전패의 기록을 세우고 무릎을 꿇는다.

그 누구도 원망하지 못하고 하늘만 바라보며 망연자실하는 것이 나약한 우리의 역할이다. 인간의 마음이 각박하고 사악해지면 자연의 경고는 더욱 가혹 해지고 선량한 나라에는 하늘이 도와 내리는 빗방울도 땅을 파지 않는다고 한다. 자연은 작은 움직임도 허투루 행하는 법이 없다고 한다.

 자연과 우주 전체는 비가역적 변화에 의해 시간이 흐르면 엔트로피 즉, 무질서도(無秩序度)가 증가한다. 여기에는 사람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개인은 말 할 것도 없고 사회 전체가 무질서해지면 혼란의 극단으로 치닫기 마련이다.

이 혼란의 시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떻게 하면 무질서도의 증가를 보다 느리게 진행되도록 질서 유지의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를 이겨내려고 노력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그러나 아무리 규제적 장치를 고도화한다고 해도 급속도로 변화하는 사회의 혼란을 완전하게 제어 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건전한 상식과 양심의 깃발 아래 도덕성이 굳건하게 뿌리 내려야 한다,

또한 자연은 인간의 행위가 가해지지 않을 때 비로소 자연이다. 아무리 환경친화적인 개발이라고 해도 일단 인위적인 요소가 작용하면 무위의 자연은 크게 훼손되든지 아니면 사라지게 된다. 대자연의 흐름에 이상이 생기면 우리가 사는 세상 또한 변화하기 마련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가 자연계에 속하기 때문에 자연의 법칙들을 이해하고 이들에 순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야만 조화로운 삶, 평화로운 삶이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장기화 되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로 평범한 일상을 잃어버리고 정신적, 육체적으로 곤경에 빠져 있는 요즘, 태풍의 위협에 또 한 번 망연자실해야 하는 우리가 새로운 변화를 모색해 빨리 활기를 되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어떠한 경우에도 용기를 잃지 않고 변화에 적응해 나간다면 전화위복의 기회는 꼭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태풍이 지나간 후의 하늘처럼 맑고 눈부신 기회가 오기를 기대하며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활짝 펴고 가을의 창을 활짝 열어 본다.

이두남  who602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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