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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모란이 피기까지는
  • 이두남
  • 승인 2020.06.10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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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남(칼럼니스트)

(울산=포커스데일리) 유월의 신록이 눈부시다. 계절의 윤회만큼 우리에게 새롭고 밝은 희망을 주는 것이 또 있을까?

청춘의 봄은 다시 만나지 못하지만 청춘에 보았던 황홀한 꽃들은 해마다 볼 수 있어 희망의 추억을 되살릴 수 있다.

또한 유월은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징검다리여서 얼마 전 봄볕이 시작되는가 했더니 어느새 여름으로 치달으며 푸른 나무 이파리 그늘을 그리워하는 때가 되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에누리 없이 똑 같은 길이로 주어지지만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그 길이와 가치가 전혀 달라진다. 올해 봄만큼 계절의 의미를 상실한 해도 없을 것이란 상념에 이를 만회라도 하듯 태화강 국가 정원을 찾았다.   

햇살이 부챗살처럼 넓게 퍼지는 오후, 백만 평이 넘는 거대한 정원 입구에 들어서자 탐스럽게 피어 있는 작약 군락이 먼저 눈에 띈다.

작약은 더위에 지쳤는지 자줏빛 색을 지우며 시들고 있었다. 이 넓은 정원에 모여있는 작약을 보며 문득 김영랑 시인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이라는 시가 바람에 스친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5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작약이 시들고 있는 모습을 보며 김영랑 시인도 이렇듯 봄의 상실감을 느꼈을까? 올 봄은 누구를 만날 틈도 없이 설렘 보다 그리움을 더 많이 쌓아 놓고 사회적, 생활적 거리두기라는 생소한 단어에 의미를 더했다.

계절의 상실감 탓인지 모란의 색감이 자취도 없이 빠져나가듯 찬란한 슬픔의 봄도 두려움의 코로나 바이러스에 가린 탓인지 자취를 감추었다.

어느 틈엔가 이념 간 무력에 의한 공포보다 인간이 파괴한 자연재해에 의한 공포가 더욱 두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하여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바이러스의 창궐로 지구는 펜데믹에 빠져 지금까지도 자연은 인간에게 출구를 열어주지 않고 있다.

국가와 국가간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자연의 파괴는 더욱 가속화 되어 자연의 보복은 고스란히 인간의 몫으로 돌아왔다.     

작은 지류가 모여 이윽고 커다란 강을 만들고 결국 바다가 되듯 작은 손길과 땀방울이 모여 이렇듯 국가정원으로 탄생해서 그 위상을 높이고 세계인의 눈과 발길을 유혹하고 있다.

펜데믹에 빠진 지구의 인류를 온전하게 구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작은 생활적거리두기부터 철저히 하고 장기화 되는 불편한 상황을 잘 견뎌 내다보면 언젠가 찬란한 슬픔의 봄을 이야기 할 때가 올 것이란 확신이 든다.

꽃이 시든다고 작약은 낙담을 하지 않는다. 이유는 씨앗을 얻는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의 습격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이를 통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자연이 주는 경고의 메시지도 되새겨 보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현실을 긍정하고 세상을 배우면서도 세상을 닮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자연을 파괴하면서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해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꽃이 시들지 않으면 씨앗을 얻지 못하듯 이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나면 더 많은 희망의 씨앗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모란이 피는 봄을 기다릴 것이다.

환희와 희망으로 가득한 찬란한 기쁨의 봄을.

이두남  press@ifocu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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