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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진달래꽃 타던 어느 봄날
  • 이두남
  • 승인 2020.03.24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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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남(칼럼니스트)

(울산=포커스데일리) 진달래꽃이 화르르 봄날은 간다. 어릴 적 동무의 얼굴도 따라 화르르 진다.

코로나 불꽃이 지구 전체에 번져 연일 긴박한 뉴스 속보를 전하던 어느 봄날, 숨이 찬 한 송이 진달래가 겁 없이 언덕배기를 붉게 물들이다 지고 있다. 서녘의 역광처럼 붉게 타들어가고 있다.

지난 19일 오후, 검게 그을린 긴급 재난 문자가 날아왔다. 코로나 19 확진자의 추가 메시지일거라고 생각하며 확인을 했다. 예상과는 달리 이번에는 울산의 대형 산불이었다. 연이은 건조주의보에 태풍에 버금가는 이례적인 강풍예보가 있었던 날이다.

확성기를 통해 들려오는 '산불조심'의 외침은 소리 없는 아우성에 불과했다. 곧바로 현장으로 달려갔으나 아니 간만 못했다.

새봄을 맞아 연두 빛 새순을 내밀며 희망으로 가득 찼던 나무와 꽃들은 떨구었던 제 몸에 의해 몸을 태우고 있었다. 겨우내 안간힘을 쓰며 이겨냈을 그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져 눈앞에 펼쳐진 암울한 광경을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그 뜨거운 불길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을 수많은 생명체들은 비상구를 찾느라 동분서주 하고 있을 것이다. 어지럽게 허공을 가로지르는 새들의 비상이 급박한 상황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았다. 사람들의 순간적인 방심을 용납하지 못하고 자연이 재난으로 응징하는 현장이었다.

소방헬기는 쉴 새 없이 하늘을 날며 물을 뿌리고 소방관들은 잿더미로 변해가는 숲속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버거운 호스를 잡았다. 겁에 질린 주민들은 발만 동동 구르며 애 궂은 강풍을 원망하다가, 최초 발화 원인을 추리하다가, 마음처럼 빨리 진화하지 못하는 현실을 원망하다가 이내 체념하고 돌아섰다.

해가 지기 전에 진화가 마무리 되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었지만 강풍을 타고 불꽃은 도깨비춤을 추며 날아다녔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소방헬기 한 대가 추락하여 한 명은 구조되고 한 명은 실종되었다는 비보였다.

사람이 만든 인재(人災)는 결국 사람의 생명까지 앗아가는 비극을 초래했다. 결국 해가 지도록 진화 작업을 마치지 못한 산불은 속수무책으로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다만 인가에 방화선을 설치하고 수많은 인력을 동원하여 인명피해만은 막아야 했다.

다음 날 아침, 동이 트기 전에 그 곳으로 달려갔다. 어둠속에서 능선을 빨갛게 태우고 있는 불꽃을 보며 말할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왔다. 사계절을 묵묵히 지키며 사람이 주는 위안보다 더 큰 위안이 되기도 했던 수목들의 비명에 죄책감이 들었다.

마음의 고통은 공기처럼 소중하여 사람은 아픈 만큼 깊어지고 성장하지만 자연은 상처투성인 채로 남는다. 그 흔적이 주홍 글씨처럼 새겨져 내내 마음을 아프게 할 것이다.

뜬 눈으로 현장을 지켰던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도 흑백으로 굳어 있었다.

코로나 19와 힘든 사투를 벌이고 있는 대구로 따뜻한 손길이 향하듯 여명의 산불 현장에도 밤 새워 고생하는 소방관들을 위해 따뜻한 음료와 식사를 대접하는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디서나 빛과 어둠, 선과 악은 공존하는 것이 현실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윽고 회야 댐을 돌아서려는 순간 붉은 불기둥이 하늘을 치솟고 있었다. 더 심각하게 타오르고 있는 산불이라고 생각하며 서둘러 달려갔다. 그것은 모세혈관처럼 허공을 가르는 나무들 사이로 솟아오르는 그 날 아침의 태양이었다. 

산불이 밤새 방대한 임야를 태우고 있는 아침에도 태양은 어김없이 제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자연은 사람으로부터 침략 받지 않는다면 어제도 오늘처럼, 내일도 오늘처럼 선물 같은 일상을 선사한다는 것을 가슴깊이 깨닫는 아침이었다.

다행히 강풍은 잦아들어 산불은 20일 오전 11시를 기해 산림 200ha 규모를 태우고 진화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가슴 졸이며 대피하고, 진화작업 중 희생자가 발생하고, 희뿌연 연기가 봄이 오는 길목을 뒤덮은 악몽의 시간이었다. 수 천 년 간직해온 소중한 자연이 불타버린 흔적은 오랫동안 우리가 안고 가야 할 아픔이다.

울산에서는 지난 2013년 울주군 서부권에서 발생한 산불이 산림 300ha 규모를 태우고 지금도 벌거숭이인 채 그날의 상흔을 기억하고 있다.

자연은 우리에게 아낌없이 베풀지만 순간의 방심은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프게 각인시켜 주었다.함께 가야 할 숙명이라면 아름답게 보존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진달래가 붉게 타던 봄날은 내 생에 가장 안타까운 봄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두남  press@ifocu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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