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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배 칼럼] 미국의 '꼼수'
  • 김정배
  • 승인 2020.01.20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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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배(문학박사ㆍ칼럼니스트)

2020년 벽두부터 해리스 미국 대사가 한국 정부와 국민을 몹시 화나게 하고 있다. 대통령의 새로운 남북관계 모색에 대해 "미국과 협의해야"한다는 발언 때문이다.

해리스의 무례하고 사려 깊지 못한 언행이 한국 국민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방위비 분담금 문제로 심기가 불편한 한국 국민에게 해리스의 발언이 기름을 부운 격이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미국철수' '자주국방' 등 격한 주장이 SNS 상에서 대세다.

그런 반응에는 미국이 북핵을 빙자하여 남북관계 진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의심도 한 몫하고 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에스퍼 국방장관은 16일자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남한은 의존국이 아니라, 동맹이다(South Korea Is an Ally, Not a Dependent)'라는 글을 공동 기고했다.

그들은 한미동맹이 한국방위, 동북아 및 세계의 평화와 번영의 '근간(linchpin)'이라는 전제 하에 미국과 한국이 "현재 아주 크고 복잡한 전략적 도전에 직면해" 있기 때문에 새롭고 특별한 합의가 필요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한국이 "자신의 국방에 더 기여할 수 있고 그래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세계 유일초강대국(hyper-power), 미국의 '크고 복잡한 전략적 도전'이야 상시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동북아의 지역 국가에 불과한 한국이 그런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는 말은 수긍하기 어렵다.

더구나 한국이 자위 능력이 없기 때문에 미국이 큰 부담을 지고 있다는 주장은 그렇게 믿도록 길들여진 사람 말고 누가 믿겠는가. 한국은 북한보다 심지어 60배 이상 강하며 약 28,500명의 미군이 한국방위만을 위해 주둔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 관리들의 황당한 주장의 근저에는 북핵이나 한국안보 자체가 아니라 방위비 분담금 요구의 필요성이 깔려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동안 한국인의 삶의 양식이 대체로 미국적 사고와 전략적 범위 내에서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미군의 작전통제 하에서 한국군은 미군의 묵인이나 허락 없이 중요한 작전을 수행할 수 없었다. 북핵문제가 불거진 이후 미국의 통제는 다양한 영역에서 더욱 강화되었다.

'비핵화'와 안보리 제재를 내세우면서 말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방위비 분담금 요구에는 발끈하는 한국 국민이 북핵문제와 관련된 미국의 행태에 대해서는 거의 비판하지 않는다. 미국이 옳다고 여긴 때문인가?

북한이 2006년 처음 핵실험을 한 이후 2020년 현재까지 한국 정부는 북핵을 '북미' 문제로 간주하고 의미 있는 역할을 하지 않았다. 보수든 진보든 거의 모든 정치인 언론인 지식인은 북핵을 정쟁의 도구로만 이용했다.

북한이 왜 핵실험을 하는지, 미국은 왜 무기력한지에 대해 진지한 논의가 없었다. 한국의 진보와 보수는 미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북한 지도부를 '악'으로 규정하고 핵실험을 '어리석은' 행동으로 비난했다. 그리고 북한의 핵실험이 이전 정부의 정책 실패에서 비롯되었다며 책임을 떠넘겼다.

진보는 '평화적' 해결을, 보수는 '한미동맹' 강화를 상투적으로 주장했다는 점에서만 서로 달랐다. 2006년부터 2020년에 이르는 15년 사이 남북, 북미, 한미 관계에는 상당한 변화가 있었는데도 그러한 패턴은 반복되었다.

1994년 클린턴 행정부의 북미기본합의는 부시 행정부가 등장하면서 깨졌고 그 결과는 2006년 북한의 핵실험이었다. 당시 보수세력은 노무현정부를 겨냥해 온갖 험담을 쏟아내며 햇볕정책을 비난하고 한미동맹의 강화만이 살길이라 외쳤다.

미국의 극우 인사들(neo-cons)은 한국 정부가 미국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고 비판하고 한국이 ‘제2전선’이 되고 있으며 미군을 철수하라고 위협하면서 한국의 보수세력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클린턴 행정부의 인사들과 카터 전 대통령은 부시의 강경책이 북핵을 불러왔다며 북미 '직접대화'를 주문했다. 하지만 '클린턴의 정책이라면 모조리 반대(Anything But Clinton)'한 부시는 북미 직접대화를 거부했다.

이후 북한은 핵능력과 탄도미사일 체계를 고도화하여 더 이상 실험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한다. 2006년에는 핵실험 자체가 문제였지만 이제는 미국 본토가 직접 타격당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도대체 미국은 그동안 뭘 했는가? 대북 제재만으로 핵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은 미국이 더 잘 알고 있다. 그런데 트럼프는 왜 제재를 고집하는가? 김정은과의 '우정'을 과시하면서까지 말이다.

미국 정부와 의회는 북한의 핵이 '방어용'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미국이 선제타격하지 않는다면 북한이 핵을 사용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북핵이 미국에게 실질적인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미국이 진실로 원하는 바는 무엇일까?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을 보유는 하되 '확산'은 안 된다는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북핵과 '비핵화'는 한국, 일본, 중국, 그리고 북한을 통제 혹은 견제하려는 미국의 목적을 위한 '도구'가 되는 셈이다.

그것은 북핵이 실제로는 한국에게 위협이 아니라는 말이기도 하다. 사실 미국은 1972년 중미화해와 7.4 공동선언 이후 '평화적' 통일을 기대하며 유엔사령부 해체를 검토한 바 있다. 박정희 피살, 광주민주화운동, 전두환 군사반란 때에도 북한은 한국을 침공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미국은 한국전쟁을 종식시키지도 유엔사를 해체하지도 않고 있다. 유엔사를 해체하면 미국은 한국군 작전통제와 일본 주둔 미군과 일본기지 사용 등 ‘한국방위를 이유’로 한국과 일본에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잃게 된다.

미국이 적극적으로 '북핵’'을 해결하지 않는 숨은 이유가 북핵을 동북아질서 유지의 '꽃놀이패'로 이용하는데 있다고 의심 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 국민에게 전쟁의 아픈 기억을 되살리며 북한의 의도와 능력을 왜곡 · 과장하면서 과도한 방위비 분담금을 요구하고 미군철수로 위협하는 것이 가소롭게 보이는 이유다.

미국이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북핵문제에 접근한다면 결코 해결할 수 없다. 진정으로 비핵화를 바란다면 북한의 자존심과 생존권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북핵을 빌미로 한국과 일본을 통제하려는 미국의 전략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한국민의 앞길을 막고 서있는 미국의 태도는 세계의 평화와 번영의 대의를 추구해 온 미국답지 않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은 70년 동안 한국을 도왔다. 하지만 독재를 지지했고 비극적인 한국전쟁조차 전략적으로 이용했던 것도 사실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미국을 구했다"는 애치슨 전 국무장관의 고백이 무슨 의미인지 한국민은 알고 있다.

북핵이 약화되고 있는 미국의 지위를 지탱해주는 '필요악(necessary evil)'으로 이용되고 있다면, 그것은 결국 미국의 퇴각을 재촉하는 '블로우백(blowback)'이 될 것이다.

본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註).

김정배  press@ifocu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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