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
HOME 오피니언 칼럼
[김정배 칼럼] 저명한 보수 논객의 '저주'
  • 김정배
  • 승인 2020.01.02 14:16
  • 댓글 0
김정배(문학박사ㆍ칼럼니스트)

보수 논객들의 글을 읽으면서 언제나 드는 느낌은 서글픔이다. 그들도 나름의 애국심과 정의감으로 나라를 걱정할 것이라는 기대는 허망하게 무너지기 일쑤다.

대다수의 글은 나라의 진로를 제시하기보다는 문재인 정부 실패의 주문(呪文)처럼 보인다.

'이승만과 박정희의 말로를 보다'라는 원로 언론인의 글은 그런 경향의 압권이다. 이승만과 박정희의 업적이 크지만 장기 집권 야욕 때문에 무너졌는데 문재인 정권에서도 그런 독재자의 말로가 보인다는 것이 글의 요지다.

대다수 보수 매체들은 문재인 정부의 국내외정책을 '친북좌파' 프레임으로 엮어 그 '종착지'가 어디냐고 묻는다. 그런데 이 글은 그들과는 달리 보수의 상징적 인물들을 소환하여 치부를 인정하면서 그것을 근거로 문재인 정부를 타매(唾罵)하고 있다.

그런 태도가 생뚱맞다. 아마도 초조하고 다급한 때문이지 싶다. 요즘 보수 우파가 느끼는 절망감, 분노, 허탈감은 어느 때보다 클 것이다. 그들의 기득권을 지켜주던 세력과 제도가 힘을 잃어가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고려 말 권문세족이나 조선 말 세도가들이 느꼈을 그런 박탈감이나 두려움과 유사한 것이리라. 보수 세력이 그동안 누려왔던 특권은 기본적으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이 저지른 반칙과 인권유린의 열매다.

지금 그런 비민주적 제도와 관행이 해체되고 있다. 보수 지식인과 언론, 그리고 '태극기 부대'는 그러한 역사적 흐름에 저항하고 있는 셈이다. 비극적 역사가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철지난 이념적 선동이나 냉전질서의 유지 운운은 무엇보다 '역사인식의 빈곤'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이해관계 때문에 그런 주장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최소한의 합리적 논리나 근거를 제시해야 상식적일 수 있다.

만약 자유민주주의를 실행해 왔다면 보수 세력의 주장은 단연히 옳다. 하지만 보수 집권 시기에 그런 일은 없었다. 쿠데타, 독재, 인권유린으로 민주주의 헌법을 짓밟은 추악한 역사가 있었을 뿐이다.

냉전시대에 미국의 편에 서 있었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를 실행해 왔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미국은 민주주의 국가이고 그런 미국의 도움으로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여 유엔의 승인을 받아 국제법적 국가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이 민주주의를 실행했기 때문에 인정하고 지원한 것이 아니다. 독재와 쿠데타 정부가 미국의 이익에 부합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런 정부는 미국에 순종적일 수밖에 없었다.

미국은 독재든 민주정부든 미국의 '뜻을 따르는' 정부라면 선호했다. 순응하는 민주정부라면 명분과 실리가 있었기 때문에 더 나았을 뿐이다. 미국 편에 섰던 독재자의 후예들이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이 우습기 짝이 없는 이유다.

역사적 전환기에는 심각한 사회적 갈등이 표출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전환을 주도하는 세력이든 저항하는 세력이든 갈등을 심화시키기보다는 상대의 입장과 처지를 충분히 이해하고 상생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보수 세력은 국민을 속이면서 문재인 정부에게 저주를 퍼붓는 ‘전술’을 그만두어야 한다. 그것이 치명적인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

지금 보수 세력에게 절실한 것은 역사에 대한 성찰이다. 그 위에서 새로운 비전과 정책이  제시될 수 있다.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보수 지식인과 언론, 그리고 시민이 통념적 ‘망상’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자멸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독재자의 말로'에서 얻은 교훈이 적용될 곳은 문재인 정부가 아니라 보수 세력이 처한 역사적 현실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저주'가 아니라 '지혜'를 찾는 노력이라는 말이다.

본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註).

김정배  press@ifocus.kr

<저작권자 © 포커스데일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정배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