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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배 칼럼] 한국은 미국의 '봉'이다.
  • 김정배
  • 승인 2019.11.08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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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배(문학박사ㆍ칼럼니스트)

미국이 한국을 함부로 대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일본 패망으로 한국을 차지한 이래, 미국은 냉전과 북한 위협을 빌미로 한미동맹의 기치 아래 때론 도우면서 때론 겁박하면서 지금까지 한국을 '관리(control)'하고 있다.

냉전 종식 이후 북핵문제가 불거지면서부터 미국은 유엔 혹은 자신의 대북제재를 무기로 한국의 '주권 침해(infringement of sovereignty)'를 서슴지 않는다. 어리석게도 한국정부가 자초한 일이기도 하지만, 한국이 대북관계에서 손발이 묶이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남북관계를 북미관계에 종속시킨 때문이다.

미국의 '무례한' 방위비 분담금 요구는 저간의 한미관계의 성격과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하나의 '에피소드'일 뿐이다.

물론 이 시점에서 미국이 5배 인상이라는 "터무니없는" 수치를 내민 것은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려는 트럼프의 '꼼수'일 수 있다. 게다가 한국전쟁 이후 주술에 걸린 듯 여전히 '미국의 주장과 이익에 보조를 맞추는 것만이 살길'이라고 믿는 미국 절대지지자들이 존재하고 최근 그들이 정치적 힘을 얻고 있는 반면 한국정부는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있는 상황이 미국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행보는 도를 넘었다. 한국인 다수가 박제된 역사인식과 안보관에 사로잡혀 '미국의 눈으로 세계를 본다'고 하더라도 정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미국의 분담금 요구에 공감할 정치인이나 국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진보와 보수가 이구동성으로 미국의 분담금 인상 요구를 "터무니없다"거나 "돈을 뜯겠다는 협박"이며 다수의 한국인이 "심한 모욕감을 느끼고 있다"고 비판하고, 유력 보수 언론조차 미국의 협상대표가 '주한 미군 철수ㆍ감축'을 내비친 것을 "완전한 협박"이라고 성토한 것은 그런 사정을 반영한 것이리라.

한국의 다수 언론이 의견일치 하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 어려운데 이례적이다. 그러나 그들이 미국의 한국안보 범위와 분담금 액수에 대해 이런저런 불만을 터트리면서도 결국 '애걸복걸' 미국에게 사정하는 모습에서, 역시 어쩔 수 없구나! 서글픈 생각이 든다.

왜 한국인은 자신의 눈으로 세계를 보고 자신의 미래 비전과 전략을 그려내지 못할까? 이승만과 박정희는 비록 무모하지만 미국에게 '개기기'라도 했다. 박정희 이후 정권들은 도두가 미국의 정책에 '알아서 기는' 것이 사실이며 지금도 그렇다. 무엇이 문제지?

일단 고민의 실마리라도 찾자는 의미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의미심장한 냉전시대의 일들 몇 가지를 소개한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은 소련에게 관련 여부를 물었고 소련은 "한국전쟁과 무관하다"고 답했다. 미국은 한국전쟁이 내전임을 확인하고서 마음껏 공군력을 사용할 수 있었다. 1967년 존슨은 코시긴에게 소련이 북베트남을 압박하여 "베트남전쟁을 조기에 끝내자"고 제안했고 1968년 푸에블로 사건 때는 친서를 보내 "북한에게 압력을 넣어 달라"고 부탁했다.

1967년과 1968년 남한의 북한 사단본부 폭파와 북한의 청와대 습격 등 남북의 게릴라 침투 공격이 자칫 전쟁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고 우려한 미국은 그런 일이 "미국과 소련에게 위험(pitfalls)"이 될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1972년 키신저가 조언라이에게 한국이 독자적으로 군사행동을 취하면 "한미동맹은 작동하지 않을 것"라고 보장해주자 조언라이는 북한의 위협적인 말은 "빈총 쏘기"라고 응답했다.

이러한 사실은 미중소가 엄혹한 냉전 속에서도 한반도를 공동 관리해 왔음을 말해준다. 냉전이 미소와 두 진영의 이념과 세력 대결만이 아니라 '적대적 공존'관계였다는 의미다. 1972년 '중미화해' 이후 동북아질서는 안정적으로 변했으며 1973년 6월 23일 박정희의 '평화통일 외교정책에 관한 특별성명'은 그 점을 웅변한다.

한국의 전통적 기득권 세력과 추종자 그리고 미국은 냉전적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새로운 위협인 북핵을 '꽃놀이패'로 이용하고 있다. 냉전 종식 이후 중미 대결 혹은 '신냉전' 운운 또한 미국적 냉전 논리의 재판으로 기만적인 현실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적대적 공존'과 '내부 통제'야말로 냉전과 북한 위협의 핵심적 이유였다. 그것들이 지식이 되고 문화가 되어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오늘의 방위비 분담금 요구는 그 모순의 적나라한 표현이다. 그 속에서, 한국은 항구적으로 미국의 '봉'일 수밖에 없다!

북핵문제가 한국정부의 낭만적 희망에서 불길한 '아킬레스건'으로 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우려가 정부 지지자든 반대자든 국민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는 듯하다. 미국의 분담금 요구는 설상가상인 셈이다.

역설적으로 지금의 역경이 대한민국의 국가안보 개념을 근본적이며 전면적으로 재조정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기존의 사고와 전략으로는 미국의 '거미줄'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그것 자체가 새로운 안보위협으로 작용할 수 있다.

미국은 '제국'이며 동북아에서 결정적인 안보 '지렛대' 역할을 한다. 적정 수준의 주한미군이 필요한 이유다. 그러나 미국이 북한위협을 빙자하며 한국의 안보와 이익을 해치는 것은 단호히 거부되어야 한다. 상호 주권을 존중하고 협력해야 한반도와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를 담보할 수 있고 그것이 미국에게도 이익이다.

본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註).

김정배  press@ifocu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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