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기념재단이 펴낸 5·18기억과 역사.

(광주=포커스데일리) 신홍관 기자 = 5·18민주화운동을 세계사적으로 접근한 연구 자료가 항쟁 39년만에 처음으로 발표돼 관심을 끌고 있다.

전남대학교 철학과 김상봉 교수는 '자기의 권리와 타인의 고통 사이에서-5·18의 세계사적 의미에 대하여'란 주제로 분석해냈다.

김상봉 교수는 먼저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프랑스혁명을 논한 헤겔의 '역사철학강의'에 비교해 해석했다.

헤겔은 "숭고한 감격이 그 시대를 지배하고, 정신의 열광은 흡사 신과 세계의 현실적 화해가 여기서 비로소 성취된 것같이 세계를 전율하게 하였던 것이다"라며 프랑스혁명을 표현했다. 이것이 헤겔이 말하는 1789년 프랑스대혁명의 세계사적 의의, 또는 다르게 말하자면 보편적 의미이다.

이에 대해 "아마도 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두고 이보다 더한 칭송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라고 프랑스혁명과 비교해 "그렇다면 5·18을 두고도 이런 칭송을 할 수 있을까?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5·18의 어떤 모습이 그런 칭송을 가능하게 하는 것일까"라며 반문한다.

그러면서 5·18의 세계사적 의미를 살피기 위해서는 염두에 두어야 할 방법론적 원칙 두 가지 있다고 제시했다.

그 하나는 5·18의 세계사적 의미는 오직 한국의 근현대 민중항쟁사가 전체로서 세계사 속에서 차지하는 의미와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김 교수는 그 이유를 "5·18의 독보적 의미는 일차적으로 한국의 민중항쟁사에서 그것이 차지하는 위상에 존립하고 있기 때문"라며 "5·18의 세계사적 의미가 만약 있다면, 그것은 오직 한국의 전체 민중항쟁사의 역사가 지니는 세계사적 의미를 통해서만 비로소 확증될 수 있을 것"이라고 단정지었다.

이어 또 다른 방법론적 원칙으로 "역사의 의미는 오직 나와 역사의 인격적인 만남 속에서만 깨달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역사적 사건은 단순히 일어난 일이 아니라 수행된 일이다. 그것은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행위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5·18을 세계사적 의미로 접근하기 위해 한국의 민중항쟁사와도 비교했다. 한국의 민중항쟁사는 이 물음에 대한 끈질긴 모색의 과정이란 해석이다.

김 교수는 그러면서 "전봉준과 동학농민군의 봉기처럼 실천적인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동학혁명에서 이 두 차원이 분리될 수 없음은 우리가 잘 알고 있다"면서 "더 나아가 안중근은 의병전쟁의 와중에서도 동양평화를 구상했고, 한용운은 3·1운동 이후 옥중에서 집필한 '조선독립의 書' 조선의 자주 독립과 인류의 평화적 공존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도도한 웅변으로 풀어내었다"고 설명했다.

또 근현대로 넘어와 "함석헌은 일제 강점기에는 '성서조선'을 통해, 그리고 유신 독재 치하에서는 '씨알 소리'를 통해 실천적 항쟁이 언제나 정신적 성찰과 함께 일어났던 까닭에 민중항쟁의 역사는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진보와 성숙의 과정이 될 수 있었던 것"이라며 "5·18은 그 진보와 성숙의 끝에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가장 드높은 봉우리이다. 거기서 항쟁의 역사는 하나의 완성에 도달하게 된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완성인가?"라며 미완의 의미도 내비쳤다.

또한 민중항쟁사 속에서 5·18이 차지하는 위상은 세 가지 또는 네 가지의 능선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그 하나는 동학혁명에서 시작되는 무장 항쟁의 능선. 이는 의병전쟁으로, 무장독립투쟁으로 이어진다. 다른 하나는 3·1운동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비폭력 저항의 능선. 이 역시 한번으로 그치지 않고 광주학생운동으로, 4·19로 이어진다. 그러면서 "하나의 경로, 하나의 능선이다. 또 다른 하나는 전태일에게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자기 폭력의 능선이다"이라고 강조한다.

김 교수는 결국 "5·18은 이 모든 능선이 만나 밀어올린 봉우리와도 같다. 그래서 우리는 5·18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최소한 세 개의 능선이 만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대부분의 항쟁이 그랬던 것처럼 5·18 역시 처음에는 비폭력적 항의로 시작된다. 그러나 그 평화적인 항의의 목소리를 계엄군이 폭력적으로 진압하기 시작하면서 시위는 격렬해지고, 계엄군의 폭력이 더욱 야만적이 되어가고 급기야 비무장 시민들에게 총격을 가하면서, 평화적인 저항은 무장항쟁으로 전환된다. 이로써 3·1운동의 비폭력 저항과 동학농민전쟁의 무장항쟁이 5·18에서 만나게 된다"고 말한다.

이어 "마지막 날 도청을 지키다 숨져간 사람들은 총을 들고 있었든 들지 않고 있었든지 간에 전태일의 뒤를 따랐던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마지막 날 그곳에 남아 있었던 것은 계엄군과 싸워서 승리하리라는 희망 때문이 아니라, 5·18의 불꽃을 후세에 전해주기 위해 전태일처럼 자신의 생명을 역사의 제단에 제물로 바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이란 말로 추모했다.

그러면서 그는 "5·18이 민중항쟁사에서 차지하는 역사적 의미는 단지 여러 능선들이 거기서 만나고 있다는 것에 있는 것만은 아니다. 5·18의 독보적인 의미는 여러 능선이 만나는 그 치솟은 봉우리에서 마치 신시(神市)와도 같은 하나의 항쟁 공동체가 기적처럼 열렸다는 데 있다"고 실랄하게 표현했다.

김 교수는 이런 논리속에 5·18의 세계사적 의미에 대해 결론을 내린다.

그는 "5.18의 세계사적 의미는 5·18이 그 항쟁공동체를 통해 새로운 나라의 이상을 열어보였다는 데 있다. 그것은 가히 하늘나라의 계시라고 부를 수 있을 법한 일이었다"면서 "동학에서 시작된 낡은 세계의 거부는 낡은 국가 이념의 거부이다. 안으로는 자유와 정의를 추구하면서도 밖으로는 침략을 일삼는 국가를 폐하고, 모든 인류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나라를 건설하려는 열망과 동경이야말로 이 땅의 민중항쟁의 역사를 추동해 왔던 근본적 추동력이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5·18 항쟁 공동체는 이익의 공유를 위해 결속한 단체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기의 이익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 때문에 열린 공동체이다. 그러니까 5·18 공동체를 가능케 한 으뜸가는 결속의 원리는 공동의 이익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응답이었던 것"이라며 "이 응답 속에서 주체는 자기 자신을 초월하고 극복한다. 그리고 이처럼 자기를 초월하는 것 속에서 서양적 국가의 이념이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자유의 이념이 계시되었다"고 표현했다.

김 교수는 끝으로 "고통의 원인은 국가 폭력이다. 그리하여 타인의 고통에 대한 참여는 국가 폭력에 대한 적극적 투쟁으로 나아가게 된다. 저항은 항쟁이 되고, 나와 너의 만남은 공동의 수난과 수동성으로부터 공동의 능동성으로 전환된다"면서 "그 능동성 속에서 자유는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된다. 이 능동성은 나로부터 너로 나아가는 행위가 아니고 나와 네가 더불어 수행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처음부터 서로주체적이다. 서로주체성이 바로 주먹밥의 나눔을 통해 일어났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무장 항쟁도 주먹밥도 모두 피 흘리는 이웃을 향해 죽음의 공포를 잊고 달려가는 데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 모두가 자기 자신의 이익과 권리가 아니라 언제나 타인의 고통을 먼저 생각하고 산다면, 그것이 바로 하늘나라의 실현일 것"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또한 "5·18은 그런 하늘나라의 모습을 계시해 보여주었다. 그것이 5·18의 영속적 의미이다. 그러나 계시된 하늘나라가 실현된 하늘나라는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5·18에서 계시된 하늘나라를 현실에서 실현하는 것이야 말로 5·18의 뜻을 이어가는 일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금 여기 이렇게 살아 있는 나의 존재는 그 날 그 자리에서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기 위해 자기의 존재를 지키는 것을 포기했던 분들의 결단에 빚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며 한탄했다.

김 교수는 결론으로 "그 빚지고 있음에 대한 자각이 5·18에 대한 새로운 응답을 불렀고 그 응답이 다시 부름이 되어 또 다른 응답을 부른 것이 그 이후 모든 항쟁의 역사였다. 그리고 그런 응답의 이어달리기를 통해, 구한말(舊韓末) 절망밖에는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던 이 겨레가 불완전하나마 지금 이 자리까지 나아왔다는 것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며 공동체를 강조했다.

그는 "그 역사를 이어가는 것, 휴전선의 경계, 또는 압록강과 두만강의 경계를 넘어 그 응답의 범위를 넓혀가는 것, 그리하여 온 세상 모든 인류가 자기의 권리와 이익이 아니라 남의 고통에 먼저 응답하는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것은 지금 여기 살아남은 우리의 사명일 것"이란 과제를 남기며 글을 맺었다.

신홍관 기자  hksnews@ifocu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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