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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혹세무민=보수는 안보에 강한가?
  • 김정배
  • 승인 2019.10.09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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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배(문학박사ㆍ칼럼니스트)

한국사회에서 '안보(national security)'는 여전히 무겁고 두려운 말이다.

늘 그랬듯 요즘 정치적 상황 역시 안보를 이유로 국민의 기본권마저 박탈한 어두운 기억을 소환하고 있다. 자파의 이익을 위해 안보를 정치적 수단으로 악용한 고약한 습성이 도진 모양이다.

물론 어떤 정치세력이든 안보가 상대를 공격하는 효과적인 수단이라면 그것을 사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안보에는 보수가 강하고 진보는 약하다'는 주장이 비교적 잘 먹히는 현실에서 보수가 안보 담론으로 진보를 공격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그런데 '안보에는 보수가 강하고 진보는 약하다'는 주장은 옳은가? 거짓이 진실로 둔갑하고 진실이 거짓이 되는 작금의 상황을 보면서 뜬금없이 생긴 의문이다.

한국의 주류 보수에게 박정희는 최고 권위이며 증거다. 황교안 대표가 "박정희를 부정하는 사람은 역사를 부정하는 사람"이라고 주장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일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믿음과는 달리 역대 보수 정부들 중 안보 면에서 자랑할 만한 정부를 찾기는 의외로 쉽지 않다. 보수에게 안보의 절대 기준인 '친미반북'이라는 점에서 볼 때 더 그렇다.

박정희는 예외일까? 그렇게 믿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진실은 그렇기는커녕 그는 최악의 안보 불안의 초대자였다. 그 점을 확인할 수 있는 근거는 아주 많다. 여기서는 안보구조의 격변기인 1970년대 초 한미관계에 한정하여 두 가지 사례만 소개한다.

⓵1971년 12월 6일 박정희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그 이유를 "북괴의 적화 통일 야욕" 때문이라고 했다. "임박한 위협은 없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최악의 경우에 대비하려는 것"이라고 얼버무렸다.

미국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평가했다: 한반도 주변의 어느 강대국도 북한의 전면 공격을 공감하거나 돕지 않을 것이며, 북한은 한국을 공격할 의도가 없으며, 한국은 미국에 의존하는 관계에서 '동반자'로 성장했으며, 박정희는 강력한 통치력으로 사회 안정을 유지하고 있고, 남북대화는 긍정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한국정부는 미국의 평가를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미국정부는 한국방위 공약이 확고함을 여러 경로로 심지어 닉슨 대통령의 서신을 통해서 여러 번 보장해주었다.

미국은 한국이 미국을 불편하게 만들면서까지 긴장을 조성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미국은 박정희의 숨은 의도를 의심하면서 "정치적 퇴행"으로 규정했다.

⓶1972년 10월 17일 박정희는 초헌법적인 '유신(October Revitalization)'을 공표하면서 국제적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긴장 완화라는 이름 밑에 이른 바 열강들이 제3국이나 중소 국가들을 희생의 제물로 삼는 일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누구도 이 지역에서 다시는 전쟁이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 장담할 수 없다."

미국은 박정희의 주장을 "미국의 아시아정책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보았다. 불과 3개월 전 '7.4 남북공동선언'을 격하게 칭찬한 미국은 졸지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꼴이었다.

미국은 박정희가 장기집권을 획책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경고하지 않았다. 그런데 유신 발표 23시간 전에 김종필 총리는 하비브 대사에게 계획을 통보한 것이다.

김종필은 유신의 목적이 "견고하고 안정적인 상황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 설명했다. "급변하는 주변 상황"과 "북한과의 대화"에 대응하려면 "현재 선거제도의 약점"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미국은 한국의 정치적 안정성에 비추어 박정희의 행동은 "불필요하며 장기적으로 어리석은 짓"으로 판단했다. 박정희의 행동이 남북대화에서 얻은 점수를 까먹고 미국의 정부는 물론이고 의회와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잃어 원조를 받기 어려울 것이며 국제적으로 실망을 불러올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미국정부는 유신 이전 상태로 돌리려면 군대를 동원하는 '극적인 개입(direct and drastic intervention)'이 필요하다고 보았으며, 국민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폭발할 때까지 통제했던 이승만을 들먹이며 "역사가 되풀이 될까 두렵다"는 경고를 날리기도 했다. 미국의 박정희에 대한 불신의 정도를 짐작케 하는 장면이다.

사실 미국의 박정희 불신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박정희는 존슨행정부 때에도 미국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종종 '북침' 가능성을 발언한 바 있다. 유신 때에 임계점에 도달한 셈이다.  

유신이 국민투표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국민이 남북대화를 거부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대책을 강구하겠다(measures will be taken)"는 한국정부의 언급을 놓고 미국정부는 이승만이 미국을 협박한 '북진(march to North)'을 떠올렸다.

박정희는 미국의 아시아 정책과는 정반대의 길을 선택하고 독자적인 군사행동을 암시하기도 했다. 미국의 불신은 깊어졌고 불길한 전망까지 내놓았다. 박정희는 "죽거나 군사 쿠데타에 의해서만(only) 제거될 수 있다."

한미관계의 단 2개의 사례만 보아도 박정희로부터 '안보'의 권위와 증거를 찾는 것이, 특이한 신념이나 무지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면, 지극히 억지스런 짓임을 알 수 있다. 보수가 박정희에 기대어 안보 운운하는 것이 딱하게 보이는 이유다.

역사적으로 보면 '보수는 안보에 약하다!'는 것이 진실에 더 가깝다.

본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註).

김정배  press@ifocu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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