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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혹세무민=-북한이 미국보다 강한가?
  • 김정배
  • 승인 2019.10.01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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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배(문학박사 칼럼니스트)

'미국과 북한, 어느 쪽이 더 셀까?' 라고 묻는다면 아마도 대다수 국민은 그 사람의 정신 상태를 의심할 것이다.

북한과 미국은 가용 군사력 면에서만 1: 1000이라는 주장이 있듯이 비교 대상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는 숱한 경험과 학습을 통해 그것을 상식으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지난달 24일 한미정상회담에서 양측이 대북정책의 '변혁(transform)'에 합의했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뜻밖이 일이며 일부 언론이 우려하듯이 '선 비핵화, 후 제재완화'라는 기존 입장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점쳐진다.

왜 미국은 "강력한 대북제재를 통한 완전한 비핵화"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새로운 접근방식을 모색하려는 걸까?

분별 있는 관찰자라며 직감했겠지만 그동안 북핵을 다루는 미국의 태도는 합리적이지도 현실적이지도 않았다. 북미는 여전히 휴전 상태에 있다. 그래서 북한이 미국의 무리한 요구를 무장해제나 항복으로 해석했지 싶다. 상대가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고집하는 것은 문제 해결 의사가 없다는 의심을 받기 마련이다.

미국이 북핵을 전략적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당연한 노릇이지만 강력한 비핵화 의지를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 않다면 시끄러운 정치적 해석을 불러일으킬 것이 뻔한 새로운 접근방식을 택할 이유가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대선 등의 정치적 일정 때문에 북한의 양보가 절실하고 그래서 미국이 먼저 양보한 것이라는 정치공학적 추측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정책 결정 과정의 전통에 비추어 볼 때 트럼프의 선택은 그렇게 단순한 계산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북미관계의 역사를 성찰적으로 반영한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투박하게 말하자면 한국전쟁 이후 지금까지 북미관계에서 미국은 어떤 식으로든 북한을 이긴 적이 없었다. 북한은 힘과 상관없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미국과 '동등한 관계'를 유지해왔고 핵문제 논의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1968년 미국의 정보수집함 푸에블로(U.S.S. Pueblo) 승무원 송환 협상은 그런 맥락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68년 12월 23일 푸에블로 승무원 82명(시신 1구와 함께)이 판문점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 남측으로 넘어왔다. 1968년 1월 23일 나포 이후 무려 28차에 걸친 북미협상의 결과였다.

이 사건에서 주목되는 것은 승무원 인수인계 과정에서 보여준 '전례 없는(unprecedented)'희한한 절차다. 미국의 우드워드(Gilbert H. Woodward) 장군은 북한이 준비한 서류에 서명하기 전에 따로 미국의 입장을 발표했다.

"판문점 협상에서 그리고 공개적으로 시종일관 표명한 것처럼, 푸에블로는 불법 활동에 관여하지 않았으며, 북한이 주장하는 영해를 침범한 확실한 증거가 없으며, 발생한 것으로 믿지 않는 행동에 사과할 수 없다. 서명하려는 문서는 북한이 준비한 것이며 미국의 입장과 모순된다. 그러나 서명이 사실을 바꾸지는 않으며 바꿀 수도 없다. 오직 승무원을 데려오기 위해(only to free) 서명한다."

미국은 비록 북한의 주장을 담은 문서에 서명하지만 그 내용을 인정하지 않으며 서명하는 유일한 이유는 인도적 차원에서 승무원을 해방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푸에블로 사건 발생 이후 협상에서 북한이 줄기차게 요구한 것은 영해 침범과 간첩활동의 '인정', '진정성 있는 사과', 그리고 재발 방지에 대한 '확실한 보장'이었다.

당시 미국은 영해를 3해리로 규정하고 세계에서 정보수집 활동을 벌여왔고 북한은 12해리를 영해로 주장하고 있었다. 미국은 푸에블로가 13해리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내부적으로는 정확한 위치를 특정하지 못했다.

미국은 사건 이후 항공모함을 동해에 배치하는 등 군사적 시위를 벌이는 한편 유엔안보리와 한국전 참전국들의 지지를 확보하고자 노력하고 심지어는 소련에게 북한을 설득시켜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은 움직이지 않았다.

미국은 북한과의 단독회담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북한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미국은 북한의 요구를 들어주면서 자신의 체면을 구기지 않는 방법, '부정된 사과(repudiated apology)'를 찾아 북한의 동의를 얻는데 성공했다.

미국의 우드워드가 서명한 북한의 문서에는 푸에블로가 "1968년 1월 23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영해를 여러 번 불법으로 침범해서 중요한 군사 및 국가기밀을 염탐하는 간첩활동을 했다"는 것을 미국정부가 인정한다고 되어 있다.

미국은 또한 "자행한 중대한 간첩 행위에 전적으로 책임을 지며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며" "향후 다시는 미국 선박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영해를 침범하지 않도록 확실한 보장"을 약속했다.

푸에블로 북미협상에서 미국은 북한에게 사실상 굴복하고 겨우 체면만 유지한 것이다. 박정희는 북미회담에서 미국이 북한정권을 '인정'하고 '과도한 사과'를 하지 않을까 우려했다. 그러나 미국은 결국 북한이 원하는 것을 모두 들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명칭의 문서에 서명했다. 그리고 북한이 주장한 12해리 영해도 인정했다.

냉전이 한창이던 1968년 푸에블로 협상과정에서 북한은 미국에게 '갑'이었다. 지금은 승무원이 핵으로 바뀌었고 주변 여건도 북한에게 유리하다.

"강력한 대북제재를 통한 완전한 비핵화" 주장이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이유다. 정서적 정치적 구호는 국익보다는 파당의 이익을 도모하는 수법이기 일쑤다. 트럼프의 행보가 기대된다.

본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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