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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혹세무민=트럼프 행정부의 '무례한 발언'의 의미김정배 문학박사 칼럼니스트
  • 김정배
  • 승인 2019.08.27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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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배(문학박사ㆍ칼럼니스트)

국가간 혹은 동맹간 특정 사안, 특히 안보 관련 발언은 설령 죽이고 싶을 만큼 불만이 크다 해도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여 '워딩(wording)'을 적절한 수준으로 조절하는 법이다.

박정희 정부가 1971년 당시 존재하지도 않은 북한 위협을 주장하면서도 나름 발언의 톤을 낮춘 이유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이 트윗에 "한국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깊이 실망하고 우려하고 있으며 그것이 한국 방어를 더욱 복잡하게 하고 미군에 대한 위협을 증가시킬 수 있다"고 한 표현은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과 분위기를 여과 없이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주한 미 대시관이 공식 계정으로 그것을 리트윗 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그런 태도는 동맹국에 대한 무례를 넘어 협박성 내정 간섭에 가깝다. 지소미아 종료 이전에 미국은 한미일의 이해충돌을 조정하지 않았다. 지소미아가 미국의 이익에 그렇게 중요한 것이라면 한일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미국이 적극 나서야 했다.

그런데 뒷북을 치고 나선 것이다. 그것도 주한미군을 들먹이면서. 미국이 한국정부를 길들이면서 늘 써먹은 메뉴가 주한미군의 주둔비용 분담 혹은 철수였다. 이번에는 주장이 과할 뿐만 아니라 앞뒤도 맞지 않는다.

불행하게도 한국인 다수는 한미동맹과 안보문제가 불거지면 일단 불안해한다. 한국전쟁 이후 특히 박정희가 북한의 위협을 빌미로 고립과 독재를 선택하고 그 안보불안을 '주술'처럼 걸어놓았고 아직도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의 쓰라린 경험과 분단체제 속에서 반공과 한미동맹은 주류의 모든 부조리를 은폐하고 사익을 챙기는 '만병통치약'으로 이용되었다. 지금 그들의 후예들이 사생결단이라도 낼 듯 정치투쟁을 벌이면서 '미국바라기'를 하고 있는 것은 그 주술의 변형일 뿐이다.

보수 유력지들의 사설과 칼럼을 보면 한국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계기로 그 고약한 습성이 다시 도진 듯하다. "한미동맹이 와해되기 시작했다." "한국 스스로 미국의 방위선 밖으로 한 발을 내민 것이다." "한국이 배제된 신(新) 애치슨라인이 그어질 것이다." "1950년 1월 애치슨 국무장관이 한국이 제외된 미국의 태평양 방위선을 발표한 것이 5개월 후 6.25전쟁을 불렀다."

섬뜩하다. '지소미아 종료가 새로운 6.25전쟁을 야기할 수 있다'는 말로 들리기 때문이다. 애치슨 선언의 배경과 이유를 잘 모르는 일반 시민에게 그러한 주장은 불안감과 불신을 조장하기에 충분하다.

어떤 정치적 목적 때문에 역사를 왜곡하고 곡해하며 민족적 비극인 6.25전쟁까지 들먹이는 것은 단순히 무지와 악의로 치부될 일이 아니다. 종국에 그들은 국민 다수의 조롱거리가 되고 말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황당한 발언과 한국 주류 보수 언론의 억지 주장이 서로의 이익을 위해 ‘묵계(tacit agreement)’하고 있는 형국처럼 보인다. 기우일까.

트럼프 대통령은 매우 솔직하고 거침없는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그가 한미연합훈련을 "완전한 돈 낭비라고 생각한다."고 발언한 바 있다. 한국의 주류 보수에게 그것은 '천박한 행태'로 보일 수 있겠지만 다음과 같은 '숨겨진 실상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첫째, 한미가 공동훈련을 해야 할 군사적 위협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미는 서로 전쟁할 이유도 없고 상호보복 핵능력 때문에 할 수도 없다. 그러면 북한만이 위협인데 트럼프가 보기에 북한은 남한을 침략할 의도도 능력도 없다.

둘째, 주한미군은 명목상으로 북한 침략에 대비해 주둔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미국이 한국정부를 '통제'하는 수단이며 지금도 그렇다. 1972년 키신저는 조언라이에게 한국군이 독자적으로 움직이면 "한미동맹은 없을 것"이라 보장해 주자 조언라이는 북한의 호전적 발언이 국내용 '빈총 쏘기'라고 화답한 바 있다.

셋째, 주한미군은 미국의 이익 때문에 주둔하고 있다. 일본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미국은 이미 1970년대 초 한국이 서방의 '최전선'이 아니라고 평가했다. 따라서 이후 독재 정권과 보수 정권이 주장하는 북한 위협은 기본적으로 국내정치용이었다. 지금의 주류 보수는 여전히 그 향수에 갇혀 있다.

넷째, 북한 위협은 미국에게 일종의 '꽃놀이패'다. 미국은 북한의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기본적으로 방어용이며 외교적 수단이라 판단한다. 위협이 아닌 북한 위협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다. 북미도 남북의 보수도 '적과의 동침'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의미다.

다섯째, 일본의 경제침략은 북한 위협 혹은 안보문제보다 경제문제가 우선이라는 판단을 반영한 것이다. 지소미아는 안보를 빌미로 일본이 미국의 손을 빌려 한국문제에 개입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한국 내부에는 어쩌면 당연한 노릇이지만 실재하지 않는 '안보불안'을 조장하고 이용하여 정치 목적을 달성하려는 '신(新) 사대주의자들'이 존재한다. 미국과 일본이 한국정부를 무시하고 억지 요구를 가능케 하는 '숙주(host)'인 셈이다.

문재인 정부는 한국의 국익을,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의 국익을, 아베 정부는 일본의 국익을 위해 서로 존중하고 협력할 때다. 한국은 미국과 일본의 '속국(puppet)'이 아니다.

본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註)

김정배  press@ifocu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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