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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혹세무민=박정희를 배반한 '박정희 후예들'
  • 김정배
  • 승인 2019.08.25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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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배(문학박사ㆍ칼럼니스트)

지소미아(GSOMIA) 종료가 알려지자 주류 보수 정당과 언론은 마치 끝장을 내려는 듯 정부 비난에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

조국에게 초점을 맞춰 정부의 '부도덕'을 부각시키는데 열중하든 차에 지소미아 문제까지 불거지니 준비해 둔 칼을 휘두르듯 공격을 가한다. "안보와 외교를 국내 정치에 이용"한다는 '프레임'도 그럴싸하다.

조국이든 지소미아든 보기에 따라서는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 그렇게 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외교 사안을 과장하거나 왜곡하여 정치적 목적을 위해 선동을 일삼는다면 그것이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

일부 정치인과 언론의 억지 주장은 과잉 이념과 폭력적 제도 속에서 국민의 삶이 짓이겨졌던 암울한 시대의 기억을 소환한다. 늘 있었던 '북의 위협'은 차치하고 선거를 위해 북측에 도발을 요청한 '총풍과 북풍' 말이다.

제1 야당 대표의 "어느 때보다 심각한 안보위기 상황"이라는 현실 규정은 뜬금없다. '어느 때보다 심각한'은 정치적 수사라고 해두자. 그러나 '안보위기'는 함부로 쓸 용어가 아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가 될 수 있고 그것이 진짜 위기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러 항공기의 영공 침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일본의 백색국가 제외, 지소미아 종료 등을 안보위기로 볼 수 있는가. 그것들은 남북미 정상회담이라는 화해와 평화의 큰 흐름 속에서 발생한 일종의 '에피소드'다.

안보위기를 말하려면 국제질서 변화의 성격, 향후 동북아질서의 향방, 그것과 연동된 한반도 및 한국의 상황 변화, 그리고 우리의 비전과 전략에 대한 디자인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래야 설득력이 있다.

그런데 그런 것이 없다. 일본의 ‘보복’과 미국의 '실망'이 결국 한미일 공조체제를 붕괴시키고 한국을 심각한 안보위기로 몰아갈 것이라는 상투적인 협박성 발언이 전부다.

게다가 그런 발언이 어느 나라를 위한 것인지 의문이다.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의 일차적 원인이 일본의 '오만'과 미국의 '방관'에 있다는 것은 상식 있는 시민이면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원인과 결과를 뒤바꿔 한미일 공조체제 파괴 운운하며 정부를 비난한다.

그러한 태도는 비굴하고 기만적이며 무엇보다 현실적이지 않다. 지소미아 종료를 놓고 안보위기를 조장하며 한미동맹이 마치 금갈 듯이 과장하는 오늘의 주류 보수 정당과 언론은 1970년대 초 박정희가 선택한 '자립(self-reliance)'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박정희는 1971년 4월 대통령 선거 이후 비교적 관용적 태도를 취했다. 하지만 10월부터 조짐이 심상치 않더니 급기야 12월 6일 헌법적 근거가 없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그는 비상사태선포의 가장 중요한 이유로 '북한의 위협'을 들었다. 그러나 북한의 위협은 근거가 없었고 한국도 미국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비상사태선포는 미국이 주도하는 동북아 평화무드와는 역방향이었다. 미국의 기분은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박정희는 미국이라는 강력한 비대칭적 동맹의 설득과 '위협'을 무릅쓰고 자신이 ‘나라를 지키는 길’이라 믿은 길을 갔다.

다음은 1971년 비상사태선포 일주일 뒤 하비브 대사와 박정희의 대화를 국무부 자료를 참고하여 재구성한 것이다.

박정희: 비상사태선포는 "한반도 안팎의 상황을 조심스럽게 검토한 뒤" 결정된 것입니다. 지금 국제사회의 추세가 평화와 데탕트라는 점을 감안할 때 국내외적으로 한국정부의 결정을 의심의 눈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큰 나라들이 긴장완화 노력을 기울일 때 일부 약소국은 "예기치 못한 사태의 '희생물(prey)'이 될 수 있고 한국도 그렇습니다."

평화와 긴장완화 중에도 어떤 침략에 대한 억제는 필요합니다. 미국의 강력한 억지력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의 공약이 전쟁 억지력으로 이바지하겠지만 그것이 100% 보장은 아닙니다."

한국은 자결권(self-determination)을 가져야 하며 그래야 스스로를 지키고 방어능력을 개선할 것입니다. "한국이 미국의 공약에만 의존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한국인은 조국을 방위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하비브: "미국은 동맹과 친구를 희생시켜 타협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중국과 회담 때 "한국과 미국의 강력한 유대를 확인할 것이며 한국에 관한 합의는 없을 것입니다."

"비상사태선포는 미국 의회, 언론, 기업이 갖고 있는 안정적이고 급속한 발전을 이루고 있다는 그동안의 한국이미지를 손상시킬 것입니다. 그것은 각별히 한국군 현대화를 지원할 미국의회의 법안 통과를 어렵게 만들 것입니다.'

박정희: 비상사태선포는 김일성에게 한국의 경계가 소홀하지 않음을 알리고 '전쟁은 없을 것이고 평화가 가까이에 있다'고 생각하는 국민에게 "북한의 위협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을 경고하고 일깨워주기 위한 것입니다.

'미국의 완전한 이해'를 기대하지 않습니다. 한국인 일부도 '실제 상황(true picture)'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으로서 나는 "나라의 안보를 지키기 위해 모든 조치를 취할 책임이 있습니다." 만약 캐나다에서 공산주의자들이 미국을 치려고 한다면 미국 대통령도 나 "못지않게 행동할(do no less)" 것입니다.

이처럼 박정희의 선택은 미국의 정책방향과는 정반대였다. 미국은 박정희를 굴복시킬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것이 한미동맹을 위태롭게 만들지 않았다. 동맹은 상호 필요와 존중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박정희는 국가존망의 기로에서 미국의 뜻을 따른 것이 아니라 향후 마주치게 될 수많은 어려움을 잘 알면서도 '자립'의 길을 택했다. 그런 점에서 오늘의 주류 보수 정당과 언론의 미일 '추종'  은 그들의 '조상'박정희를 배반하고 있다. 세상과 국민을 속이면서.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본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註)

김정배  press@ifocu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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