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
HOME 오피니언 칼럼
[詩詩한 이야기] 익어가는 것에 대하여우동식 시인
  • 포커스데일리
  • 승인 2018.10.21 07:11
  • 댓글 0

(여수=포커스데일리)

모든 것이 익어갔습니다
들녘은
천연 색소를 뿌려놓은 양탄자 위를
덤블링합니다
제 먼저 손님을 맞는
대추나무 한 그루 오지랖도 넓게
이층 옥상까지 영역 펼치고
댓 말 넘게 주렁주렁 매달아 놓았습니다
익어간다는 것은 저렇듯
제 빛깔을 채우는 것인가 봅니다

숯불 철 쇠에 전어 굽고 삼겹살 굽습니다
나긋나긋 노릇노릇합니다
그래요 익어간다는 것은
자신을 태워 기름기를 빼
정갈한 식단이 되는 것인가 봅니다

어느 듯 섬달천에 걸린 노을
소호를 들끓게 하다 툭, 떨어집니다
하루의 끝자락에 긴 여백을 마련해줍니다   
잘 익어간다는 것은
사라지기 위한 게 아니라
투명해지고 비우는 것인가 봅니다

잘 숙성된 동동주 한 잔 나누고
고기 한 점 입에 넣습니다
익어간다는 것은 제 맛을 내는 건가 봅니다
얼큰하게 취한 가을 소리도 익어가고 
우리도 온통 발그스레하게 익어갑니다
익어간다는 것은
품은 멋과 향을 내 뱉는 것인가 봅니다

<해설>

가을의 어느 멋진 날 소호동 호수같은 바다가 보이는 언덕, 시인의 집에 초대 받아 간 적이 있다. 들녘은 온통 천연 색소를 뿌려 놓은 양탄자 같이 누렇게 익어갔고 덤블링을 하고 싶을 정도로 포근해 보였다.

초대받은 집에 도착해보니 담장을 기대고 대추나무 한그루 댓 말 넘게 열매를 달고 고개 숙인 얼굴로 맞이한다. 푸릇푸릇했던 대추가 붉은 빛을 띠며 색소를 저장하고 있다. 익어간다는 것은 저마다의 고유한 색깔을 지니는 과정임을 생각 하게 된다. 옥상에는 손님맞이 전어와 삼겹살이 노릇노릇 굽히고 있다. 지글지글 기름기가 빠지고 누군가를 위하여 정갈한 식단이 차려 진다.

소호동 해넘이가 진행 되고 있다. 어느 시인의 이야기처럼 다시금 바다는 태양을 잉태하고 하루의 끝자락에 긴 여백을 만들어준다.

익어간다는 것은 사라지기 위한 것이 아니라 투명해지고 비우는 것이다. 비움으로 다시 태어나고 채워 지는 것이 아닐까?

술잔이 몇 순 오가고 얼굴이 불콰하게 익는다. 동동주 한잔에 고기 한 점 입에 넣고보니 고기도 익었고 동동주도 농익었다. 캬아 ! 그래 사는 게 이맛이지 적당히 익어가면서 맛을 내는 것, 제 빛깔을 낼 줄 알고 제 맛을 낼 수 있다는 것, 가을도 익어가고 사람들의 관계도 얼큰하게 익어간다. 시를 읇고 노랫가락이 나오고 춤판이 벌어진다. 품었던 멋과 향이 은근히 발산 된다.

만물이 다 익어가는 계절이다.

100세 인생의 사람들도 익어가고 있다. 나는 어떤 빛깔로 채워지고 있을까? 나는 누구를 위한 정갈한 식단이 되고 있을까? 나는 얼마나 비워가고 있을까? 나에게서 풍기는 맛과 멋은 무엇일까? 익어간다는 것은 정말 무엇일까?

익어가는 가을바람이 길을 묻는다

포커스데일리  press@ifocus.kr

<저작권자 © 포커스데일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시시한 이야기#가을#우동식 시인

포커스데일리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